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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Apr 02. 2019

귀한 손님 오시면 은빛 갈치로 베지근한 갈칫국 대접

제주도 제주시 복집식당

  갑이 선 늙은 호박의 단맛은 가을이 깊어져야 제 맛이다. 제주도에서는 울퉁불퉁하고 골이 깊은 단단한 호박을 골라 마루 한쪽에 잘 모셔둔다. 그러다가 어느 가을날 귀한 손님이 오시면 노란 호박을 넣은 은빛 갈칫국을 대접한다.

  지금의 제주도는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섬이다. 그러나 기억 저편 제주의 역사는 아픔과 고통의 세월이었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먹는 것, 입는 것도 충분하지 못했다. 내륙에 비해 풍부한 것이라면 생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돔, 갈치, 고등어, 멸치 등의 싱싱한 생선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 그 맛은 강한 양념을 한 매운탕과 비교가 안 된다.


  갈치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알맞게 들어있다. 당질도 풍부하여 싱싱한 갈치는 단맛이 난다. 제주도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많지만 제주도를 벗어나면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른 새벽 바로 올라온 은빛 찬란한 갈치로 끓인 갈칫국. 낚시로 잡아 올린 갈치는 은갈치라고 하여 갈칫국이나 회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그물로 잡는 먹갈치는 살이 물러 회로 먹을 수 없다.      




  제주도에 오래 사신 몇몇 어른들이 추천한 갈칫국을 잘 끓인다는 식당 주인을 만나보았다.  


  “제주도 사람이 갈칫국 먹은 지는 오래되었어요. 예전에 살길이 막막하여 밥집을 시작했어요. 50년 정도 되었나. 예전엔 갈치가 아주 흔한 생선이었어요. 요즘은 갈치가 잘 나지도 않아서 비싸요. 그래도 제주도민들은 손님 대접한다고 하면 갈칫국을 끓여달라고 와요. 갈칫국이 무슨 맛이냐면, 베지근한 맛이지. 갈치가 싱싱하면 은빛이 국위에 돌아 떠 다녀요. 이게 갈치가 싱싱하다는 뜻이에요.”   



  갈칫국의 맛을 내는 비결은 단순하다. 통통하고 싱싱한 갈치와 배추, 늙은 호박 그리고 집에서 만든 간장과 소금. 칼칼한 맛을 원한다면 청양고추를 조금 넣는다. 그릇에 담긴 모양은 소란하지 않다. 국물 맛은 갈치의 단맛을 가만히 느낄 수 있지만 비리거나 느끼하지 않다. 거기에 늙은 호박의 역할도 있을 게다. 이미 국물에 익은 갈치의 흰 살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양 옆의 뼈를 바르면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고 고소하다. 아무래도 소박한 양념이 이 집 갈칫국의 비결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찬으로 차려지는 갈치 내장젓과 자리젓도 제주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갈치젓을 밥 위에 썩썩 비벼 먹으면 바다향기를 한입 문 듯 정신이 퍼뜩 든다. 이 또한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제주도 말로 쿠싱 한 맛이라고 한다. 젓갈의 구수함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젓을 담글 때는 소금 넣는 비율이 중요한데 소금의 양이 많으면 고기가 너무 절여져 뻣뻣해진다. 50년 넘도록 젓갈을 담근 주인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싱싱하고 맛깔나는 젓갈을 대접하려고 분주하다. 뒷마당에 수북한 젓갈단지는 모두 그녀의 솜씨이다. 

  “소금을 너무 넣으면 이 고기가 꽈작 해져서 바다로 갈라고 해요.”     

  그녀의 마디 굵은 손으로 쓱쓱 비벼 주던 자리젓과 갈치젓 맛이 생생하다.  



 복집식당은 현영자(여, 82세) 할머니께서 50년간 운영하셨다. 지금은 딸(김지우)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제주시에 사시는 어른들이 추천해 준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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