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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Apr 02. 2019

갈비 살은 팔팔한 살을 발라, 정성으로 구워야 제맛

서울 동두천 송월관

  얼핏 보면 고슬고슬하고 네모난 모양이 팥고물 얹어진 시루떡이다. 자글거리며 빛나는 소리를 함께 들어야 떡갈비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떡갈비는 전라도와 경기도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요리하는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경기도에는 서울과 북한 원산을 잇는 동두천역이 있다. 6.25 전만 해도 강원도 철원과 중부교통의 중심지로 역 주변이 분주했다. 우시장과 양조장이 있었고 5일장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우시장에서 도축(屠畜)한 소를 리어카로 들고나는 이들도 많았다. 


  세월은 분주했던 동두천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지금은 5일장도 우시장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6.25 이전부터 지역주민이 찾았던 식당이 아직 남아있다. 1945년 8남매를 키우기 위해 차렸던 식당 주인의 그 손맛은 노인들에게 추억이 되고 있다.      

  “우시장이 성하던 시절, 5촌 삼촌께서 피가 흥건한 소갈비를 리어카에 싣고 오면 시어머니는 바빠지셨죠.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니까 성화셨어요. ‘갈비 살이 팔팔팔 살아있을 때 살을 발라야 한다.’고 말이에요.” 

  스물다섯 새색시의 기억에는 쳐다보기도 싫은 광경이었다.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지만 싫은 내색도 못하고 도끼를 들어 고기 살을 발랐다. 곱게 발려진 고기들은 나무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냉장고가 없던 그때, 쌀겨 위에 나무상자를 깔고 얼음을 올린 다음 다시 나무를 깔아서 만든 나무로 만든 냉장고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떡갈비 가격 2,500원.      


  동두천 떡갈비가 유명해진 것은 돌아가신 강옥매 할머니와 그녀의 뒤를 잇고 있는 며느리(송성자 사장) 덕분이다. 70년이 넘도록 하나의 메뉴를 지켰다. 쇠고기 가격이 폭등을 하여도 다른 고기를 섞지 않았다. 소갈비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간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가 변하지 않는 떡갈비의 맛을 지키는 비결은 무엇일까? 30년 넘게 좋은 고기를 대어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 앞에서 흘린 땀과 정성이 더해진다. 뜨거운 날에도 연탄불에 석쇠를 돌려가며 고집스럽게 떡갈비를 구워내었다. 기름 먹은 연탄불에 다져진 고기가 타지 않도록 속까지 익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야채가 많으면 먼저 타버리고 수분이 과하면 으스러져 모양이 망가진다. 고슬고슬한 표면 속에 잘 익은 쇠고기의 육질을 지켜야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쇠고기의 성질이 평하고 달며 무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쇠약해진 몸의 기운을 북돋고자 할 때에는 쇠고기를 찾는다. 그래서일까, 송월관에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과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다. 시어머니를 이은 가업이 100년은 가야 한다는 그녀의 소원은 연탄불 앞에서 반은 이루었다.



송월관(1945년 개업)은 송성자(여, 며느리) 사장이 故강옥매(시어머니) 여사의 뒤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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