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안동문화원
안동의 지명유래는 고려 태조 왕건의 역사기록에서 확인된다. 삼국시대에는 고창군(古昌郡)으로 불렸는데 태조 왕건(신라 경순왕 4년, 서기 930년)이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에게 승리한 뒤 ‘능히 동국을 안정시켜준 고장’이란 뜻의 ‘능안동국(能安東國)’이라는 글자를 이 지역에 하사했다. 즉 안동(安東)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것이다.
안동은 낙동강 중상류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있어 앞에는 큰 강을, 뒤에는 산줄기를 두고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정치, 사회적 변화는 시대의 격변 속에 안동지역의 선비정신과 유교사상을 강화시켰고 주민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문중조직의 발달과 혈연적 유대에 의한 신분 결속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였고 관광자원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안동에는 아름다운 골짜기마다 서원이 세워질 만큼(흥선대원군 당시에는 679개에 달했다,) 서원이 많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서원은 도산서원, 병산서원, 역동서원, 묵계서원 서산서원 등 50여 개이다. 서원은 ‘선현 존경과 후진 장학’이라는 정신에서 시작한다. 선현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의미이다.
이중,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선생과 응계(凝溪) 옥고(玉沽) 선생을 모시고 있는 ‘묵계서원’은 조선 숙종 13년(1687년)에 창건되었는데 지난 2015년에 특별한 보물이 발견되었다. 보백당 종가에서 1868년 ‘연시례(延諡禮)’를 지냈던 기록이 있는 일기를 찾아낸 것이다. 연시례는 임금이 내린 시호(諡號) 교지(敎旨)를 지역유림과 관원들이 축하하면서 맞이하는 의식이다. 일기에는 시호를 청하는 내용과 서원·사당 수리, 행사에 대한 논의 등 연시례에 관한 모든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임금이 내린 시호를 받은 선현들은 많았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부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보백당선생 연시시 일기(寶白堂先生 延諡時 日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대사간과 대사헌, 부제학 등 3사 요직을 지냈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우리집 보물은 오직 청백뿐이다.’라는 유훈을 남겨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기도 하다.
안동문화원에서는 2017년 9월 7일, '보백당선생 연시시 일기'의 연시례를 재현하여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제작하였다. 묵계리 마을회관부터 묵계서원까지 취타대와 각부 현령, 유림단 등 대규모의 ‘선시단 시가행렬’을 선두로 시호맞이와 서제를 올렸다.
시대의 빠른 변화와 가치관의 혼돈, 윤리의식 약화로 국민이 지쳐가는 요즘이다. 정신적 가치와 전통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현들이 후손에게 남기고자 했던 교훈이 무엇인지, 안동을 방문하면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