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이 공연, 불꽃축제의 명소 화순 적벽

by 소리빛


화순 적벽은 자연의 푸른 잔치 상에 붉은 시루떡을 층층이 얹어놓은 모양이다. 볕이 좋은 날이면 그 모양이 더욱 선명하여 찬양(讚揚)의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많은 사람들이 변을 당하거나 귀양을 떠나게 된다. 그중 신재 최산두(崔山斗, 1483~1536)가 전라남도 화순군에 유배되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 윤구, 유성춘과 더불어 호남의 삼걸(三傑)로 유명하다. 화순과 인연을 맺은 이후, 화순의 아름다운 절벽을 둘러보고 중국의 적벽에 못지않다고 하여 ‘적벽(赤壁)’이라 이름을 지었다. ‘노루목적벽, 보산리 적벽, 창랑리 적벽, 물염적벽’이 그것이다. 또한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 사랑했던 적벽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에는 4월 초파일이면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공덕을 찬양하기 위한 ‘적벽 낙화놀이’도 즐겼다.


적벽낙화(赤壁落火)는 한밤중에 여는 불꽃놀이 축제였다. 미리 산에서 구한 풀을 말려놓았다가 팔뚝 만하게 썰어 돌을 넣어 묶는다. 초파일이 되면 장정들이 적벽에 올라 건초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던진다. 한 밤에 떨어지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꽹과리와 북을 치고 신명 나게 놀았을 것이다.


화순군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인 화순적벽을 관광자원의 첫째로 꼽는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5년에 걸친 상수도용 동복댐 건설로 적벽의 일부가 수몰되고 접근이 불가하게 되어 가까이 볼 수 없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2014년 10월, 30여 년 만에 이곳을 공개하면서 관광객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화순적벽은 화순군민의 소중한 문화자원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소풍장소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유서석록(遊瑞石錄)을 재현하기 위한 공연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화순적벽 망향정 공연장에서 직접 공연을 한다. 유서석록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이 광주 무등산을 돌아보며 쓴 견문록으로 ‘서석산’은 무등산을 일컫는다. 당시의 감흥을 주민들이 공연한다고 하니 지역축제의 산실(産室)로서 더욱 의미가 있겠다. 게다가 화순문화원에서는 화순 적벽의 ‘적벽낙화’를 홀로그램으로 제작했다는 소식도 있다.


화순문화원은 지역문화예술과 관광자원 활성화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sbscnbc2018.3.21. 게재된 칼럼입니다.

* 이미지는 화순군청의 자료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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