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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Apr 09. 2019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의 차이, 약수로 만든 백숙

경상도 청송 달기약수 닭백숙 해성

  청송 가는 길은 점점이 붉다. 안동에서 사과밭 향기를 따라 달리면 어느새 청송이다. 이 지역의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물이다. 주왕산 자락을 병풍처럼 둔 주산지는 경종이 즉위한 해(1720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공한 저수지이다. 연구에 의하면 바닥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와 퇴적암이 쌓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물을 머금은 지층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안개와 바람이 머무는 이곳은 사계절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주산지 입구에는 청송의 사과와 자두 등 지역특산품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앉아있다. 새콤한 단물이 쪽쪽 나오는 홍로사과를 베어 물고 달기약수 닭백숙 집들이 모여 있는 약수터를 찾아본다.


  조선 철종(제25대 왕, 1849~1863) 때 금부도사를 지냈던 권성하는 청송으로 낙향을 하였다.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마을 사람들과 농수로를 정비할 때 물을 발견하였는데 당시의 지명인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을 따서 달기약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금부도사가 발견하였을 당시, 약수가 지하에서 나올 때 ‘골골골 꼬르륵’ 소리가 났다고 한다. 마치 암탉이 알을 품을 때 나는 소리와 같아서 달기약수라고 지었다는 설이다. 약수터는 원탕과 신탕, 중탕, 천탕, 상탕 다섯 곳이 나란히 있다. 그리고 주변에 십여 개의 작은 약수터가 더 있다.

 


여는 옛날 역사가 있다.
1980년대만 해도 관광차가 많아서 장작을 지어 날라 닭을 삶아댔어.
전부 검은 솥을 걸고 했지. 여 약물에서는 여서 들으면 달기 소리가 난다.
그래서 달기약수라고 했지.
쇳내가 나고 혀끝을 콕콕 쏘는 맛이 여가 젤 좋은 물이다.

  허리가 굽은 팔순 넘은 할머니는 약수터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약수 한 사발을 떠 준다. 약수터 주변은 산화된 붉은 혈관이 툭툭 삐져나와 그 연로함을 보여준다.        

닭백숙 재료


  30년 전만 해도 백숙 한 마리를 시켜놓고 하루 종일 고스톱을 치던 등산객들이 있었다. 그들을 태워 들고나던 관광버스의 안내원이 백숙집 부엌에 턱을 대고 있기도 했다. 가마솥 누룽지를 얻어가려는 것이다. 약수로 지은 누룽지는 구수함 이상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반평생을 닭백숙 삶는 일을 하고 있는 이해성(남, 52세) 사장은 어떤 날은 늦은 밤까지 손님들을 받느라 잠을 설쳤다. 손님들이 원하면 자던 방도 내주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약수와 닭의 맛을 조금 알겠다고 한다. 

닭백숙


  약수터 주변에는 약수백숙을 하는 집이 30여 곳이나 된다. 재료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약수로 조리한 백숙이다. 철분이 많은 약수로 밥을 하면 밥알이 푸르고 찰지다. 쫄깃한 다리 부위는 부드럽고 퍽퍽한 가슴은 쫄깃해진다. 맛은 담백(淡白) 그 자체이다. 여기에  오가피와 각종 약재를 넣어 달인 국물은 약이라 생각하고 마시면 된다. 함께 나오는 닭죽은 녹두를 갈았음에도 텁텁함이 없다. 이 모두를 먹고 나면 그 정성에 앓던 병이 나을 것이다.

녹두죽


  약수백숙은 눈에 보이는 재료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데 보이는 재료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니 함부로 논하지 말라는 구반문촉(毆槃捫燭)의 가르침이 이곳 약수 닭백숙에 담겨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 N 문화' : 우리 집의 맛과 향토 음식에 게재된 글입니다.


달기약수 닭백숙 해성 이해성(남, 52세) 김외숙(여, 51세) 부부는 어머니 정복순(여, 80세) 씨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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