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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Apr 10. 2019

조갯살 듬뿍, 국물 맛 좋은 링귀니 라 칸티나 드실래요

서울 을지로 라 칸티나 레스토랑

  오래된 붉은 벽돌과 묵직한 가구, 깊숙이 자리 잡은 와인 바와 조용히 흔들리는 호리병 모양의 필라멘트, 그리고 기사의 갑옷과 비너스, 생화가 있는 테이블. 마치 옛 영화에 나오는 고급식당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 칸티나(La Cantina)’이다.      


  한국의 고급 레스토랑 문화가 생겨난 역사를 살펴보면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요릿집이 그 시작이었고 이후, 명월관이 개업을 한다. 

1904년 영국인 베델이 만든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9월 18일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명월관 기념. 명월관에서 작일(어제)은 해관설시(該館設始·새로 문 열다)하던 제오(第五) 기념일인 고로 국기를 고양(高揚)하고 기념식을 설행(設行)하얏다더라”라고 보도했다.  

  기사의 내용에 따라 ‘명월관’이 개업한 시기는 1903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24년에는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현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나인스 게이트)’가 문을 열었다. 당시의 메뉴가 ‘에그 베네딕트, 양파 수프,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스테이크’였는데 서울에서는 최초의 서양요리였던 셈이다.     



  1967년에 개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 칸티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50년 세월이 그대로이다. 오랜 시간 그 맛과 공간의 분위기를 지켜간다는 것은 어렵고도 귀한 일이다. 처음 이탈리아 음식을 시작한 계기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조이 벨라르디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사회문화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서 ‘사랑방’의 역할이 컸다. 1세대였던 이재두(2013년 작고) 씨는 이탈리아 식재료를 사용하여 이탈리아의 맛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이태훈(남, 54세) 씨는 주방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여 28년 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저는 아버지의 말씀에 거역을 한 적이 없어요. 넘겨주실 때도 아버지는 ‘가게에 큰 손을 대지 마라’고 그러셨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어요. 20년 만에 외관 공사를 할 때도 시대에 맞게 현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었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서운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원상복구를 했어요. 벽돌과 천정, 바닥도 다시 처음과 똑같이 재공사를 했지요.”      

  그가 옛것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공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오래된 벽돌을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처럼 생화를 사서 테이블마다 꽂는 일을 직접 한다. 음식 맛은 주방에서 시작되지만 음식을 서빙하고 손님을 이해하는 나이 지긋한 직원들의 몫도 크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탱한 힘은 30년 이상 같이 일한 직원들이었고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탈리아 식재료가 없던 시절에는 면과 소스, 빵 등을 손수 만들어야만 했다.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은 어머니께서 손수 하셨다. 어머니는 야채와 고기를 사기 위해 서울의 야채 상점과 시장을 안 다닌 곳 없이 다니셨다. 당근 하나를 고르더라도 엄격했고 발품을 팔아 최고의 식재료를 구입하셨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그러한 노력을 보아온 아들은 지금도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식재료를 구하러 다닌다.

  이탈리아 음식을 한국의 식재료로 요리하면서 이탈리아의 음식 맛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맛에 대해 호불호가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평일과 주말, 이곳을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 오랜 단골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여든 넘은 할아버지 여덟 분이 오셨었죠.
 젊은 시절 먹었던 그 파스타를 먹고 싶어서 오셨다는 거예요.
이제 못 올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참 고마운 분들이시죠.
 저희 집은 연세 드신 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세요.
나이 드신 분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하세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부담없이 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가끔은 멋도 부리고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필자는 이곳의 대표 메뉴라고 하는 ‘링귀니 라 칸티나’와 ‘로메인 샐러드’를 주문했다. 링귀니 라 칸티나는 봉골레처럼 조개로 국물을 우려내어 국물 맛이 깊다. 마늘 맛이 풍성하여 느끼하지 않고 시원한 국물은 이탈리아식 봉골레와는 차이가 있다. 이태훈 씨의 말에 의하면 링귀니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칼국수 면을 만들어 대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지락 칼국수 같은 느낌도 든다. 조개는 일일이 손질하여 접시에 담아내기 때문에 조개껍질을 벗겨낼 수고로움이 없이 맛을 즐길 수 있다. 탱글탱글한 조갯살이 신선하다.

로메인 샐러드 

  이태훈 씨는 테이블 옆에서 로메인 샐러드의 시저 드레싱을 직접 준비했다. 샐러드의 맛을 신선하게 살리기 위함이다. 레몬즙, 계란, 마늘, 올리브 오일, 우스터소스(worcestershire sauce) 등을 커다란 나무 볼에 순서대로 넣어 나무주걱으로 빠르게 섞는다. 그리고 뚝뚝 자른 로메인 양상추를 가볍게 버무려 샐러드 접시 위에 담는다. 마무리는 크루통(crouton, 튀긴 빵조각)과 파르메산 치즈(parmesan cheese). 빠른 손놀림 덕분에 제대로 된 시저 드레싱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대표 메뉴 중 유명한 로메인 샐러드였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시저 드레싱을 섞는 나무주걱의 끝은 닳고 닳아 뭉툭하다. 이니셜(initial)이 새겨진 주석으로 제작된 오래된 식기도 있다. 언제나 웃으며 반기는 지배인은 인생의 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고 그러한 직원들이 아홉 명이나 된다. 어느 날 필자의 나이가 예순을 넘어 다시 찾더라도 이곳이 변함없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비 오는 날이면 조개와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파스타 국물이 먹고 싶어질 것 같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역사유산' : 근대 신문 속 음식 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라 칸티나의 1세대인 이재두 씨의 뒤를 이어 아버지를 닮은 이태훈(남, 54세) 씨가 28년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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