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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y 02. 2019

처음 짜장면의 색은 검은색이 아니었어요

인천 차이나타운 만다복

  어릴 때, 필자의 시험성적이 좋은 날이나 상장을 받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셨다. 나는 그때마다 ‘짜장면’을 외쳤다.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면 벽에 적힌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기하게도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철가방을 든 아저씨가 짠하고 나타났다. 정말 빨랐다. 아저씨는 한 손에는 철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자전거를 몰았는데 번쩍이는 네모난 함석 가방에는 붉은 글씨로 중국집 이름이 크게 쓰여 있었다.           


  1936년 2월 16일 동아일보 <대회여록>을 살펴보면 "이분들은 그대들을 기러내인 직공(職工)이니라, 우동 먹구 짜장면 먹구 식은 변또 먹어가며 그대들을 가르첫느니라"라고 기재되어 있다. 최초로 ‘짜장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기사로, 제3회 조선 남녀전문학교 졸업생 모임의 풍경을 다루었다. 선생님이 공장의 직공처럼 고생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키웠다는 내용이다. 선생님의 노고는 우동과 짜장면, 식은 도시락으로 대변된다. 이와 함께 우동과 짜장면은 당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짜장면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날의 음식이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고 배달음식의 대명사였다. 그 덕분에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짜장면이 선정(2006년 문화체육관광부)될 만큼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짜장면

 

  임오군란(1882년) 이후,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된다. 그 주변에 중국 산동성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북성동, 선린동 일대에 중국인 거리가 형성되었다. 6·25 전쟁 이후, 서민들의 삶은 매우 어려웠다. 화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짜장면을 싸게, 많이 팔아야 했다. 화교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춘장을 사서 조미료를 넣고 고기보다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물컹하게 조리를 했다. 그 시절에는 저렴했던 감자, 양파, 양배추를 더 많이 넣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에도 없는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화교 2세인 서학전(남, 59세) 씨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열네 살 때부터 중국집에서 일을 시작하여 이십 대 초반에 중국식당을 개업했다. 그는 짜장면이 차이나타운에서 변화된 과정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 짜장면의 시작은 중국의 산동지방과 연관이 있어요.
아버지는 산동 제성이 고향이에요.
중국의 짜장면은 돼지고기와 채소를 볶아서
중국식 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음식이에요.
장은 짠맛이 나는 면장(面醬)인데 집집마다 다르고
지역에 따라 장의 차이가 있어요.
짜장면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처럼 검은색의 춘장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중국식 면장은 검은색이 아니거든요.
한국 된장처럼 갈색이죠.
예전에는 돼지기름에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볶았어요.
달콤한 춘장은 ‘사자표 춘장’이라고 1948년에 만들어졌지요.   



  서학전 씨가 운영하는 만다복에는 하얀 백년짜장면과 그냥 백년짜장면이 있다. 한국에 짜장면이 처음 들어왔던 시절의 짜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하얀 백년짜장면은 검은색의 춘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중국식 된장에 생 돼지고기와 야채를 볶고 닭 육수와 마늘, 오이를 넣어 비벼먹는 면이다. 반면, 백년짜장면은 춘장을 사용하여 고기와 야채를 볶는다. 간짜장면과 비슷하지만 걸쭉한 소스가 아니다.     


하얀 백년짜장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맛에 당황할 수도 있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있다. 따듯한 면 위에 닭 육수를 두세 숟가락 뿌려주어 면을 부드럽게 준비한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그 맛은 밍밍하다. 싱싱한 오이를 함께 넣는 것을 잊지 말고 다진 돼지고기와 야채볶음, 다진 마늘도 한 숟가락 넣는다. 이 모두를 면과 함께 비빌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하여 양손으로 풀어주면서 비빈다. 그리고 입맛에 맞게 마늘과 육수를 추가하면 된다. 신선한 돼지고기 덕분에 고기 맛이 풍부하고 다진 야채와 마늘이 느끼한 맛을 덜어준다. 게다가 오이의 아삭함이 입맛을 개운하게 한다. 백년짜장면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먹으면 된다.       


차이나타운의 공자상

   인천 차이나타운이 관광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1년 근대유산들을 재정비하고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한국 속의 작은 중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중국의 올바른 음식문화를 전파하고 싶다는 주인장은 하얀 백년짜장의 맛은 시골 할머니 집의 된장찌개 맛이라고 설명한다.

  “할머니네 된장찌개는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고 건강한 맛이에요. 첫술은 특별하지 않은데 먹다 보면 냄비 바닥까지 먹게 되죠. 그 맛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짜장면과 같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하는데, 중국집마다 비슷한 춘장을 사용한다면 맛의 차이를 내는 비결이 있을까? 있다. 바로 재료의 신선함과 미묘한 면발의 차이이다. 특히 면을 만드는 밀가루와 물의 비율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 것이 불문율(不文律)이라고 한다. 이 비밀이 계속 지켜진다면, 짜장면의 행복한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만다복은 차이나타운이 개발될 당시 서학전(남, 60세) 씨가 중국의 건축과 음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개관하였다. 현재(2018년) 12년째 아내와 운영 중이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역사유산' : 근대 신문 속 음식 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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