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는 경기도 중서부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 집중된 정부기능을 분담하기 위해 지어진 행정도시로 1986년 시흥군 과천면(경기도 과천출장소)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과천의 북서쪽에는 관악산, 동남쪽에는 청계산이 있어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연주암과 연주대, 온온사와 과천향교, 과천서울대공원, 과천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과천과학관, 과천경마장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역사와 문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시이다.
조선의 문화융성을 이루었던 두 왕을 꼽는다면 당연히 세종과 정조일 것이다. 그 중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꽃피웠던 정조(1776~1800)의 추억이 어려 있는 장소가 이곳 과천이다.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서글픔을 가슴에 품고 14년이라는 세손의 생활을 견딘 정조는 폭군이 되지 않았다. 임금으로서 개혁을 위해 인재에 차별을 두지 않고 백성을 아꼈으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지역의 관리들이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지 암행어사를 보내 민생의 안정을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는 수원의 현릉원을 자주 찾았다. 아마도 자신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조의 재위 24년 간 66회의 행행(行幸, 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동하는 의식)을 하였는데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횟수가 13차례나 되었다. 1월과 2월 중에 수천여 명의 신하와 함께 현원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과천에서 쉬었다. 8일 간의 긴 여행에서 경치 좋고 조용한 과천의 객사가 편하고 쉬기에 알맞았다. 과천의 백성들은 ‘무동답교놀이(경기도무형문화재 제44호)’를 공연하면서 아버지의 묘를 찾던 정조를 위로하고 환영하였다.
‘주위경관이 좋고 쉬어가기 편하다.’ 생각한 온온사(穩穩舍).
정조는 현판을 객사에 내리고 직접 글도 썼다.
이때 관아동헌에는 부림헌(富林軒)이란 현판도 하사하였다.
뿐만 아니다. 갈현2동에 있는 우물은
정조의 갈증을 풀어 주어 당상(堂上, 정3품)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가졌다.
그래서 ‘찬우물’ 또는 ‘가자(加資)우물’이라고 부른다.
과천문화원에서는 과천관아의 서헌이었던 ‘온온사’를 널리 알리고 관아를 복원하여 대표적인 지역문화자산으로 가치를 높이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선행 작업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그에 대한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과천관아 복원사업의 타당성을 설득하고 지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고즈넉한 온온사를 다시 찾아 한 줌의 봄볕을 즐겨야겠다.
sbscnbc2018.3.23.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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