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이 바라보는 세종시의 탄생, 함께 만드는 도시

by 소리빛

행정중심 복합도시 세종시는 충청권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청주시, 서쪽에는 공주시, 남쪽에는 대전광역시, 북쪽에는 천안시가 있다. 2002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한 이후, 4년 만에 ‘세종시(2006. 12.)’라는 행정 도시명이 확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의 단체들이 생겨났고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다. 2012년 7월 1일, 17번째 광역자치단체로서 국토 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특별자치시(초대 시장 유한식)가 출범했다.


세종시에는 충청남도 연기군과 공주시,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 지역이 포함되었다. 과거에는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에 가기 위해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연기군에 가장 복잡한 거리인 ‘아홉 거리’(구거리, 아홉 갈래의 길)가 있었다. 전국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복잡한 거리로 매일 장이 섰다. 우스갯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길이 매우 번화하여 새색시를 싣고 가던 가마가 서로 바뀌어 엉뚱한 곳으로 시집가서 살았다는 어느 처녀의 이야기도 있다.


해마다 3월 초가 되면 연기군 용담리 사람들과 대전시 유성구 안산동,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사람들은 ‘덕진 산성제’를 지낸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산성을 3 등분하여 연기와 유성, 공주지역으로 각각 나누어 놓았다. 이로 인해 마을마다 산성제의 명칭이 다르다. 연기군에서는 ‘용담리 산성’이라 하고 안산동과 송곡리에서는 ‘송곡리 산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 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지역자료에 따라 연기주민들은 1994년부터 ‘덕진 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기군의 역사와 문화를 물려받고 도시 이름을 새롭게 한 이후, 10여 년이 흘렀다. 우리는 이 도시의 역사·문화·물리적 배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세종문화원에서는 ‘세종시의 역사적 탄생기’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을 채록하는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 첫 시도는 ‘세종시 인물 100인 구술자료 집성’이다. 현장의 자료 수집과 연구는 필요하고 뜻있는 작업이다. 세종시가 탄생하는 과정에서의 주민들의 참여와 개인적 경험, 공동체의 재편에 관한 영상과 녹음자료들도 수집된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은 학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다만, 당시의 목소리를 이론이나 편견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이에 대한 전문가의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세종문화원은 수집한 자료를 가공하여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e-book으로 공개될 계획이다. 향후에는 지역민의 축제를 기획하면서 풍부한 창작의 소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예컨대 10년을 주기로 지속적으로 추진됨으로써 세종시의 변화와 발전이 단절 없이 자세히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나중에 세종시 주민들의 커다란 재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sbscnbc2018.3.26.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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