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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y 02. 2019

그 집 솥단지에 뭐가 들었나?
천서리 막국수촌의 비법

경기도 여주 천서리 막국수

  메밀반죽 한 덩이를 유압기에 넣자마자 오슬오슬한 면들이 줄줄이 떨어진다. 거뭇한 면이 뜨거운 물에 닿자마자 휘휘 저어 채로 건진다. 재빨리 찬물로 옮겨 쭉쭉 당기고 손으로 감아 옆의 찬물 그릇으로 던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줌으로 마무리된 면들을 얌전히 그릇에 담는다. 그 손놀림에 거침이 없다. 메밀 면은 조리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 따라서 면 뽑는 기술은 메밀 면의 맛을 좌우하는 비법 중 하나이다.  


메밀국수 면발 뽑기


 

찬물에 면 헹구기


 경기도 남한강 부근의 천서리에는 십여 개의 막국수집이 있다. 천서리란 지명은 신래천(神來川)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천서리 막국수촌의 메밀국수 맛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저마다 조리비법을 지니고 경쟁을 하다 보니 정해진 맛이 없어 각각의 특징이 있다. 개인의 입맛에 따라 국숫집을 선택하면 된다. 


  여주 천서리에서 처음 막국수집을 시작한 곳은 강계봉진막국수이다. 평안북도가 고향이었던 부친이 이곳에 막국수의 터전을 잡게 되었다. 입소문이 난 비빔국수의 붉은 양념장을 있는 그대로 비벼먹으면 입안이 남아나질 않는다. 귀가 놀랄 매운맛이다. 홍원막국수는 명성만큼이나 대단하다. 식당에 들어서서 주문하자마자 5분 만에 음식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면이 불었거나 맛이 덜하지 않다. 그만큼 운영방식이나 조리법이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치미 육수의 댕기는 맛과 칼큼하게 매운 비빔막국수 맛을 가진 천서리 막국수집이 있다.     


비빔막국수


동치미막국수


  윤희정(남, 60세)씨는 막국수로 장사를 시작할 때, 다른 식당의 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고 한다. 젊은 날, 맛을 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버린 쓰레기 봉지를 뒤져도 보았다. 물맛이 중요하다 하여 정수기로 동치미를 숙성시켜 보기도 했다. 마음이 앞설 때는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러나 밤잠을 설쳐가며 메밀국수의 맛을 찾고자 보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매운맛을 찾는 거였어요.
단맛, 신맛, 매운맛 요거를 지켜야지.
손님 중 3분의 2가 비빔막국수를 드세요.
양념장에 열네 가지가 들어가는 데 야채가 들어가기 때문에 자주 만들어야 하거든. 그거를 하다 보면 얼마나 땀이 나는지 몰라.
비빔국수는 먹고 나서 뒤끝이 깨끗하고 여운이 남지.
그게 맵지만 개운한 맛이야.

 

  잘 달인 사골국과 익은 동치미 국물. 후루룩 면부터 건져먹고 남은 국물을 들이켜 본다. 사골, 양지, 무, 배, 다시마, 좋은 소금.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재료가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히 맛을 낼 수 없는 비법은 그들의 땀이다. 툭툭 던져 넣는 채소와 고기 몇 점에는 그들이 넘고 일어선 긴 시간이 담겨있었다.      

  동의보감에서는 메밀이 차가운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체내의 열을 내리고 소화를 도와 오랫동안 쌓인 체기를 없앤다고 기록한다. 그래서인 속이 답답한 날에는 그 집의 동치미 막국수가 생각난다.     

  



윤희정(남, 60) 천서리 막국수의 명성을 30년째 지키고 있다.

*  위 글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 N 문화' : 우리 집의 맛과 향토 음식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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