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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Jan 04. 2020

순천 하면 오동통한 꼬막 한 접시와 마늘통닭이지요.

라일락회색의 와온해변과 갈대꽃이 눈처럼 날리는 순천만 습지

    

  역시 여행은 기차가 답이다.

  이른 아침부터 용산역 로비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간간히 못다 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보인다. 남도여행의 특징이라면 가슴 시원하게 탁 트인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터널들. 휙휙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즐기려면 갑자기 어두운 터널이 나타나 방해를 한다. 하나, 두 개, 세 개.... 방심하면 터널의 블랙홀에 빠져들어 풍경보다 숫자놀음에 집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십 개의 터널을 통과하여 마법같이 순천에 도착한다.        


  와온해변(臥溫海邊). 순천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이다. 그 광경에 감히 숨을 쉴 수가 없다. 시린 갯벌에는 해변에서 시작한 긴 용트림이 바다 끝으로 이어진다. 수평선에 걸려있던 태양은 깊은 바다의 푸름과 밤빛에 빛나는 라일락 꽃잎의 회색빛 사이에서 잔잔한 살구빛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아름답고 청정한 갯벌에서 짱뚱어와 꼬막, 맛조개 등 풍부한 수산자원이 자란다. 예전에는 저만치 떠 있는 솔섬에 주막도 있었다. 뭍으로 돌아오는 어부들이 목을 축이던 쉼터였다. 멀리 순천 도심투어를 하는 빨간색 트롤리버스에서 겨울 여행객들이 우르르 내린다.      


  운 좋게 순천이 고향인 친절한 택시기사님을 만났다. 국가정원에 대한 자랑과 순천의 역사까지 줄줄이 말씀하신다. 필자는 순천만에서 나는 청정 꼬막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사님께 꼬막 요리를 잘하는 식당 소개를 부탁했다.

  “여기는 찬바람 불면 꼬막이 살이 올라 맛있어요.
순천 꼬막이 최고지.
우리는 꼬막 먹고 싶으면 시장에 가서 한 바가지 사다 먹으면 되지
그 뭘 밖에서 사 먹어요.”


  그의 말에 의하면 꼬막은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가 제철이다. 꼬막은 갯벌에 나가면 널려있고 시장에서 싸게 팔기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식당에서 사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순천 사람들에게 꼬막은 별미라기보다 갯벌과 함께 하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순천 꼬막은 특별하다.      


  겨울철의 꼬막은 맛도 좋지만 철분, 헤모글로빈,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비만과 피부미용에 탁월한 식품이다. 사실 꼬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종류가 많다. 일반적으로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 등 3종류로 볼 수 있는데 이 중 참꼬막을 최고로 친다. 참꼬막은 사람이 직접 갯벌에서 재취하고 새꼬막은 그물을 활용해 잡기 때문에 대량 수확이 가능하다. 성장 기간도 4년, 2년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택시기사님이 소개해 준 꼬막 요리 잘하는 풍미정은 순천시청 뒷골목에 있다. 꼬막이 가득 들어있는 꼬막전과 신선하고 알 굵은 꼬막이 양푼 가득 나온다. 향긋한 바다 내음과 꼬막 특유의 담백함이 부드럽다. 김경희 사장은 꼬막 삶는 비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꼬막은 불 조절이 중요한데 은근한 불에 살짝 익혀야 해요.
꼬막이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오래 삶으면
육즙이 흘러나와 꼬막의 촉촉한 제 맛을 잃게 되거든요.”     



  꼬막의 입이 살짝 벌어졌을 때가 좋다. 먹는 방법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꼬막의 이음새 부분을 숟가락 끝으로 돌리면 살을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다(집게를 사용하면 더 편리하다). 다음으로 상추와 무, 깻잎 등 신선한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에 꼬막을 비벼먹으면 꼬막비빔밥이 된다.      



  고요한 밤길을 걸어 버스터미널 근처의 풍미통닭집을 찾아갔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36년째 자리 지켜온 전통방식의 통닭집이다. 처음에는 볼품없고 초라했지만 현재는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어머니 강영애 사장의 뒤를 이어 아들 박세근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시절에는 통째로 튀긴 통닭을 맛있게 파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 가업에 뛰어든 박 대표는 젊은 취향으로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포장·배달, 매출 분석 등을 개선하였다. 인기 메뉴인 마늘통닭은 당일 염지한 생닭을 압력솥에 초벌로 튀긴 후 다진 마늘을 듬뿍 바른 것이 특징이다.

풍미동닭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열 명 중 여섯 명이 관광객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다. 필자도 대기표를 뽑아 기다렸다. 꽤 긴 시간의 기다림이었지만 포장된 상자를 받자 지루함이 기쁨으로 바뀐다. 마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저녁을 먹었음에도 갑자기 식욕이 생겨 숙소로 급히 돌아왔다. 곱게 간 생강에 청주와 달걀을 섞어 만든 비법 육수가 튀김 반죽을 바삭하게 하고 특유의 닭 냄새를 잡아냈다. 거기에다 신선한 닭은 부드러운 마늘소스 옷까지 입었다. 이것은 매운 향과 개운함을 합친 강력한 향기 전략이다. 양념을 고루 묻혀 닭의 다리 하나를 찢었다. 촉촉한 살과 마늘이 조화롭다. 기름 마저 신선하여 담백한 닭의 살이 혀에 감긴다.     



  ‘하늘의 순리에 따른 땅’ 순천.

  순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의 갈대밭이다. 어느 초겨울 저녁, 눈처럼 날리는 갈대꽃을 본다면 이곳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순천만 주변의 논에서 자란 벼는 친환경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약 230여 종의 철새가 겨울을 나기 때문에 겨울철새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곳,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친절했다.          



[도움 주신 분]

  김경희 사장이 운영하는 풍미정은 기사님들에게 유명한 20년 된 식당이다. 갓 잡은 꼬막과 신선한 야채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경영철학이다.

  풍미통닭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식당은 두 곳으로 운영하는데 먹고 갈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곳과 배달과 포장만 하는 곳으로 분리되어있다. 모두 줄을 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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