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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09. 2020

찹쌀꽃 피운 부각이 세계적인 스낵으로

경상남도 거창, 자연이 만드는 부각

  안방에서 다락으로 올라가는 문지방은 허리만큼 높았다. 필자는 어릴 때 다락방이 있는 한옥에서 살았는데 닳아서 반질반질한 문지방을 올라 다락방에 들어가면 그곳은 신기한 보물창고와 같았다. 어머니는 봄부터 가을까지 그때그때 나오는 나물을 말려 바구니에 담아두셨고 겨울에 먹을 무청도 누렇게 말려 걸어놓으셨다. 흰 종이에 쌓아둔 고추부각과 실에 꿴 곶감 목걸이, 귀한 과일들. 이 모든 것들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불투명한 창문 너머 햇빛에 반짝였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 부각이나 튀각은 채소와 해초를 잘 말려서 찹쌀풀이나 밀가루를 묻혀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긴다. 품이 많이 들어 옛날에는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오실 때 내놓는 음식이었다. 경상남도 거창은 청정한 산에서 나는 약용식물과 제철 재료를 사용하여 부각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 다양한 부각을 처음으로 상품화하여 산업화에 앞장서고 부각의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오희숙 전통부각>을 찾아가 보았다.       

   

  윤현묵(남, 70세)씨는 오희숙 부각 명인의 남편이자 회사의 운영을 맡고 있다. 오희숙 씨는 시어머니가 만드시던 부각의 손맛을 그대로 살린 장본인이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법을 인정받아 명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지요. ‘음식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먹는 것이다.’ 음식은 몸에 좋아야 한다는 의미예요. 어머니는 계절에 따라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오신다는 것을 다 기억하고 계셨어요. 오시는 분의 취향에 맞는 부각을 미리 만드셨지요.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보시는 식재료는 모두 부각이 될 수 있었어요. 더덕, 인삼, 뿌리 식재료를 부각을 만든다는 것이 그때는 놀라웠지요.”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 양력 4월 20일)부터 보름 동안은 부각을 만들기 좋은 시기이다. 거창에서는 이 시기를 부각 명절이라고 부른다. 부각의 재료가 될 재료의 새순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윤현묵 씨는 훌륭한 남편이자 외조로 유명하다.       


  “우리 거창은 자원이 풍부해서 부각의 재료도 풍부합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하죠. 부각은 아침 일찍 풀(찹쌀풀)을 발라 오후 한나절 말려야 가장 맛이 있습니다. 찹쌀풀에 말리면 그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요. 찹쌀풀이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발효가 되면 튀길 때 꽃이 피면서 그 향과 맛, 용량이 그대로 보존됩니다.”           


  그들이 알려 준 부각에 대한 비법은 이러하다. 부각 재료를 말리려면 새벽에 찹쌀풀을 발라서 오후까지 말리는데 이슬을 맞혀 한 번 더 말리면 식감이 더 꼬득해 진다. 예전에는 광목천, 밥상보를 덮어 말렸다. 풀을 발라 마무리하면 일주일 이상 걸릴 만큼 시간이 걸린다. 자연바람에 그냥 두는 것보다 조물조물해서 재료 속의 찹쌀을 빠져나오게 하면 더 잘 마른다. 거기에 집안에서 내려오는 소금을 다루는 비법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에 여느 부각의 맛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잘 말린 재료를 기름에 튀기면 찹쌀풀은 눈 깜짝할 사이에 꽃처럼 피어난다. 바삭한 부각 소리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반찬으로만 알고 있던 부각이 스낵으로 변화하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부각의 바삭한 맛을 유지하고 저장기간을 길게 하는 포장법을 찾아야만 했다. 바로 자연재료의 식감 유지, 스낵의 맛을 내는 코팅기술, 저장기간을 늘리는 문제를 개선하여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그래서 김부각, 다시마부각, 연부각, 인삼 부각, 고추부각 등 찹쌀 부각 시리즈가 탄생했고 대용량 캔 시리즈와 선물세트 등을 연이어 출시할 수 있었다. 포장디자인도 세련되어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다. 감자와 다시마부각 등은 간식용으로 좋고 김부각과 황태 껍질 부각 등은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부각은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노부부는 부각에 대한 애환도 추억도 많다. 

  긴 장대에 찹쌀풀을 입혀 걸어둔 가지부각을 타고 찹쌀 고드름이 누렇게 열리면 오후 햇살에 노릇노릇 말라붙는다. 놀이 삼아 까치발을 하고 노릇한 찹쌀 고드름을 따먹고 있는 어린 날의 윤현묵 씨를 그려본다.     

       

[도움 주신 분]     


하늘바이오는 30년 동안 오희숙(여, 65세) 전통부각 명인과 남편 윤현묵(남편, 70세)씨가 부각에 대한 고민으로 이룬 부각 전문 회사이다. 전통방식을 그대로 종가 비법을 담아 12단계의 공정으로 생산되며 딸 윤현민 씨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수출을 시작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 N 문화' 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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