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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15. 2020

클래식 음악만 듣고 자란  막걸리랍니다.

단장 양조장 클래식 생막걸리

    

  고즈넉한 밤길을 따라 단장 면사무소에 겨우 도착했다. 그 옆에는 2층짜리 우체국이 있고 또 그 옆에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양조장이 있다. 양조장의 생김새는 꽤 오래되었다. 백열등이 노랗게 밝히는 마당에서 여주인 이정숙(59세) 씨와 사위 배현준(34세) 씨가 반갑게 맞는다.        

     

  늦은 밤 일부러 이곳을 찾은 이유는 ‘클래식 막걸리’ 때문이다. 지난가을 막걸리 박람회 장소에서 젊은 배현준 씨를 만났다. 그는 클래식 생막걸리의 맛을 극찬하며 이곳으로 필자를 초대했다. 단장 양조장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이들 가족이 이곳에서 술을 빚기 시작한 시간은 오래되지는 않았다. 장인 박종대(60세) 씨가 귀향하면서 양조장을 인수하였고 2009년부터 온 가족이 본격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게 되었으니 십 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생뚱맞은 질문이긴 하지만, 막걸리가 분위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술일까?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데이트를 하면서 잔 너머로 비치는 연인의 눈동자를 담기에는 너무 탁하다. 그렇다고 맥주처럼 광장을 채운 인파 속에서 젊음을 외치며 마시는 술도 아니다.      


  흔히 막걸리는 일을 하던 중간에 새참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을 한다. 잠시 노동의 시름을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두부와 김치 한 조각을 안주로 삼거나 부침개 지짐 정도면 되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일부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논일을 하던 논둑에서, 동네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골목길의 가게 앞에서, 고기 굽는 식당에서도 그때그때 분위기를 이끌었다. 심지어 음악 없이 혼술을 해도 멋쩍지 않은 술이 막걸리이다. 어쩌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술이라기보다 우리 삶의 일상(日常)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 며칠 지난 거 없습니까?"


  “생막걸리는 살균을 한 막걸리와 달리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짧지요. 음악을 들으면 옹기 안의 효모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효모가 운동이 활발하면 발효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죠. 계절에 따라 1차 발효와 2차 발효 시간이 조금 다르고 발효용기에 따라 달라요. 일반적으로 병입 후, 2-3일 있다가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데요. 팔아보니까 막걸리 맛을 아는 분들은 ‘며칠 지난 거 없습니까?’하고 찾습니다. 저흰 다양한 막걸리 체험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어요.”     

  배효준 씨는 단장 양조장의 사위이다. 동갑내기 박혜진 씨와 결혼하여 가업을 잇고 있다. 막걸리 생산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와 연계하고 있는 전략들을 이야기하며 자신감에 차 있다.      


  잠시 후, 흰머리를 곱게 넘긴 이정숙 씨가 따듯한 두부 지짐과 신 김치를 접시에 담아 안주상을 들여오신다. 그리고는 막걸리는 잘 익어야 맛있고 흔들어야 더 맛있다며 한 잔 가득 따라주신다. 묵직한 쌀 맛이 고소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인위적인 탄산이 없어 거북하지 않아 더욱 좋다. 그녀는 시집올 때만 해도 술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고 한다.     


  “저희가 전문적인 음악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어요.  
효모는 아기와 같다고 생각해요.
'예쁘다'하고 말을 걸어주고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착하고 예쁜 효모들이 맛있는 막걸리가 되지요.
술을 빚다 보니, 이제 이거 한 병 정도는 먹을 수 있어요.”          


  요즘은 유자나 사과와 같은 지역의 특산물과 혼합한 다양한 맛의 막걸리도 등장한다. 2017년부터 인터넷에서도 전통주를 유통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단장 양조장은 밀양에서 생산되는 쌀로만 술을 빚어 특산주로 면허를 받고 인터넷 판매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인 꾸지뽕을 사용하여 신제품도 출시했다. 꾸지뽕 막걸리는 특유의 단맛과 파스텔 톤의 분홍빛으로 여심(女心)을 공략한 제품이다. 백 년 된 양조장에서 부모님의 기술을 바탕으로 톡톡 튀는 젊은 생각들이 전략적으로 뭉쳤다. 거기에 음악적 감성까지 더해졌으니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깊어 가는 겨울밤, 생막걸리가 익고 있는 숙성실에는 요한 페헬벨(Johan Pachelbel)의 카논(Canon)이 흐르고 커다란 옹기 안의 효모들은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도움 주신 분]          


  밀양의 단장 양조장은 가족경영을 한다. 부부인 박종대(아버지, 60세) 씨와 이정숙(어머니, 59세) 씨,  사위 배현준(34세) 씨와 그의 아내 박혜진(34세) 씨. 단장이 고향인 박종대 씨는 음악 애호가이다. 막걸리 효모에게 들려줄 클래식 음악을 선곡하는 것은 주로 그의 일이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있다면 양조장 곳곳에 자리한 흥미로운 음악 소품들도 둘러보기 바란다.     


 위의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 N 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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