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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3. 2020

45년 된 떡볶이와 좁은 의자

서울 숭인시장 제일분식

 

  코 흘리던 시절, 친구들과 주머니의 동전을 모아 푸른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떡볶이 아주머니를 여왕으로 모시는 꼬마 졸개들이 좁은 의자에 닥지닥지 앉아있었다. 네모난 철판 그릇에는 보글보글 떡볶이가 끓고 그 옆에는 흐물흐물 단물이 빠진 무와 어묵이 수증기를 모락모락 뿜어냈다. 우리는 군침을 삼키며 어깨를 맞대고 기다리다가 아주머니가 하사하는 떡볶이 그릇을 황송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 그때는 10원에 떡볶이 한 개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100원을 내면 아주머니의 마음만큼 담아주고 떡볶이를 푸는 주걱의 크기만큼 덤으로 채워주던 때였다. 


이 나이가 되어도 먹고 싶은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직도 나는 ‘떡볶이’라고 대답한다. 


  그중 시장 떡볶이가 제일 맛이 있다고 답하고 싶다. 미아리 숭인시장에는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다. 채소가게, 반찬가게, 의류매장이 즐비한 숭인시장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제일분식, 이곳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추억을 들을 수가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맛은 변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시장으로 들어와서 어쩌다 보니 한평생을 여서 산다. 고추장은 지금도 내가 직접 만들어. 떡볶이는 고추장 맛이야. 고추장하고 고춧가루 하고 배합이 잘 돼야 하지. 우리는 45년 전 쓰던 것 그대로, 재료도 방법도 똑같아.”     

  

   45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일분식의 권규환 어르신(남, 75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방앗간에서 쌀떡을 뽑아 그 크기, 그 모양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신다. 크기는 새끼손가락만 하고 한 입에 먹기 좋은 굵기이다. 떡볶이의 떡은 크기가 작아도 안 되고 커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는 맛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별 것 없다고 하면서도 다시 말을 잇는다.     


  “아침에 새벽 3시에 나오면은 나 혼자 다 준비해놓는 거야.
그러니 누구도 몰라. 비법은  양지머리 육수가 들어가요.
그래야 그 맛이 나는 거지. 그기 없으면 안 돼요.
고정도만 알면 되지요.”     


  맛은 오랜 시간의 학습에서 우러나온다. 주인장의 주름진 이마의 고랑 사이로 매일 새벽에 떡볶이 고추장을 만들고 육수를 달였을 그의 젊은 날들이 지나간다. 막내아들(권정인, 44세)이 그의 가업을 받아 십 년째 도맡아 일을 하고 있다. 식탁이 있는 내부가 있고 조리대를 빙 둘러싼 식탁이 있다. 그 앞에는 남녀노소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떡볶이와 순대, 어묵, 국수, 냉면, 쫄면, 김밥 등을 먹고 있다. 떡볶이 가격은 이천 원.     


  2015년까지 천오백 원하던 떡볶이 값을 오백 원 올렸다. 재료비가 오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가격을 인상하였지만 손님들이 서운해할까 봐 덤을 주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도 든다. 둘째 딸 권서영(47세) 씨는 맛과 메뉴는 변하지 않더라도 경영방법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떠한 변화를 꿈꾸고 있는지 기대가 된다.     


  진한 어묵 국물로 목을 축이고 본격적으로 떡볶이를 음미해 보자. 적당히 불은 쌀떡에 매운맛이 깊고 은은하게 배었다. 양지머리 육수가 맛의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콧물을 훌치럭 거리면서도 손은 입으로 떡볶이를 실어 나른다. 다음은 윤기가 나는 김밥의 성을 허문다. 김밥의 내용물은 노란 단무지와 시금치, 당근이 전부이다. 잘 데쳐진 신선한 시금치와 아삭한 당근, 단무지의 맛이 조화롭다. 떡볶이 국물을 살짝 찍어먹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내친김에 고구마 맛탕과 국수도 시킨다. 순대도 한 접시. 건너편 자리에서는 쫄면을 시킨다. 아차, 쫄면! 그 새콤함을 부럽게 쳐다보던 필자의 눈빛이 부담되었는지 건너편의 손님들이 반쯤 덜은 쫄면 그릇을 넌지시 밀어준다.      



  필자도 조청을 예쁘게 입은 고구마 맛탕을 몇 개 담아서 답례를 하였다. 이곳, 좁은 의자 위에는 떡볶이에 대한 순정(純情)이 함께 앉아있구나.      


[도움 주신 분]     

  제일분식은 권규한(남, 75세) 씨가 평생을 보낸 곳이다. 맛도 메뉴도 변함이 없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 이유는 배고픈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밀떡이 아닌 쌀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 애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의 뒤를 막내아들 권정인(44세) 씨와 둘째 딸 권서영(47세) 씨가 잇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 엽합회의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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