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 고덕면 도토리떡
시어머니는 팔월 보름이 지나면 뒷산으로 향했다.
도토리를 줍기 위함이다. 시어머니(인현분)는 예산군 고덕면에서 손맛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특히 도토리떡을 잘 만드셨다.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도마와 칼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러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배운 며느리(조연원, 64세)는 그녀의 손맛과 정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도토리라고 해서 다 맛있는 것이 아니에유. 떡갈나무 도토리가 맛있어유.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이 맛이 안나유. 도토리는 껍질을 까면 까맣고 딱딱하게 굳어유. 옛날에유? 그때는 절구에 빨고 맷돌로 갈아서 채로 내리죠. 어머니는 그렇게 했지요. 지금은 기계가 있으니까 여러 번 갈아서 곱게 채로 내리죠. 도토리는 가루를 갈면 ‘깔깔깔’ 해유.”
그녀는 특유의 말솜씨가 있었다. 흐르는 시간이 아쉬울 만큼 자랑거리도 많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뒷산에는 도토리나무가 많은데 그중 떡갈나무의 도토리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아무리 곱게 갈아도 도토리가루는 깔끄럽다. 도토리떡의 맛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러한 도토리의 식감과 향을 즐긴다. 쌀이 귀한 시절에는 멥쌀과 도토리가루를 설기 설기 얹어 떡을 해 먹었다. 텁텁하고 거칠어도 배고팠던 시절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요즘은 지역의 음식이 유명세를 타면서 도토리떡을 찾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도토리의 탄닌 성분이 피부미용에 좋고 아콘산은 피로 해소와 몸속의 유해물질을 배출해 준다는 효능 덕분이다. 조연원 씨는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멥쌀 대신 찹쌀을 사용하고 콩과 단맛을 추가하였다. 그래서인지 주문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손으로 할 때는 절구로 도토리를 빻으면 껍데기가 벗겨져요. 채로 까부르면 얇은 껍질이 날리죠. 그러고는 마당에 펼친 멍석에 말려요. 좋은 햇볕에 며칠을 말리면 껍데기가 일부는 벗어지고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다 벗겨서 또 말려야 해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문이 있는 날에는 새벽부터 분주하다. 그녀가 방앗간에서 도토리를 갈고 떡을 찌는 날에는 시어머니가 동무를 해 주셨다. 고부(姑婦) 간의 정이 좋아 효부상도 받은 며느리이다. 그러나 심장병을 앓고 있던 시어머니는 지금은 옆에 계시지 않는다.
조연원 씨는 마을에서 제일 바쁘다. 하루라도 방앗간의 문을 열지 않으면 마을의 일들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떡을 만들면 완전 판매를 한다. 그녀가 자랑하는 시어머니의 손맛과 그녀의 활발한 성격 덕분이다. 주로 예약주문을 받고, 여러 지역의 음식 블로거들이 그녀를 믿고 떡을 홍보해 준다. 도토리떡과 예산의 사과를 재료로 만든 사과떡도 인기가 있다.
끝도 없이 손이 가는 고소하고 쌉싸름한 도토리떡. 도토리떡은 냉동실에 저장해 두었다가 간식으로 꺼내먹어도 맛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때이고 지난가을의 그리움을 맛볼 수 있다. 문득 그녀의 가슴 먹먹했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도움 주신 분]
예산군 고덕면 한천에서 도토리떡으로 유명한 조연원(64세) 씨는 41년 전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잘 생긴 남편이랑 결혼하여 행복했고 시어머니의 손맛을 배워 감사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의 방앗간을 운영하며 예산의 고유음식에 대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