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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r 15. 2020

과메기는 기장미역에 싸서
꼭꼭 씹어 먹는 것

경북 포항 해구식당 과메기


  어느새 성큼 한 해의 끝이 다가왔다. 겨울을 보내기 전에 들를 곳이 몇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이 포항이다. 10년 전만 해도 구룡포항 근처에는 과메기 덕장이 줄을 서 있었다. 매섭지 않은 바닷바람과 풍부한 햇빛, 높지 않은 습도 등은 쫀득한 과메기의 맛을 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메기 맛을 아는 사람들은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포항의 과메기를 생각한다.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를 겨울바람에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여 건조한다. 1832년에 쓰인 「경상도읍지」를 살펴보면 “영일만의 토산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는 영일과 장기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 가공의 관목 청어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청어과메기가 먼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부터 포항에는 청어가 많았다. 너무도 흔하여 값이 쌌고 가난한 선비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이었다. 그래서 선비를 살찌게 한다는 의미의 ‘비유어(肥儒魚)’, ‘비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809년(순조 9년) 빙허각 이 씨가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 「규합총서」에는 청어, 비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비웃 말린 것을 흔히 관목(貫目)이라 하나 잘못 부르는 것이다.
관목어란 비웃을 들고 비춰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해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린 것으로,
그 맛이 기이하니 비웃 한 동에 관목 하나 얻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관목은 신선한 청어(靑魚)를 말린 것을 일컫는다. 청어와 과메기에 대한 이야기는 해석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다. 청어의 눈을 뚫어 말린다 하여 과메기의 어원이 관목(貫目)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빙허각 이 씨의 생각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생선의 신선함은 그 눈을 보면 알 수 있으니, 신선도가 청어의 맛을 좌우했을 터이다. 그래서 신선한 청어를 오랜 시간 얼리고 말려 잘 건조한 귀한 관목 청어를 임금에게 진상(進上) 하지 않았을까.       


  한때는 부산항에 배가 입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청어 떼가 몰려든 적도 있었다. 그만큼 흔하고 값싼 생선이 청어였다. 영일만에서 조업을 하던 어부들은 잡은 청어를 배에서 직접 말려 먹기도 했다. 배에서 말린 청어 과메기의 맛은 지상에서 말린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요즘 먹고 있는 꽁치 과메기가 청어를 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1947년 전후, 동해안의 청어 생산량이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산경제신문> 1947년 12월 16일 신문을 보면 ‘익키! 청어 한 마리 백여 원, 침만 생키는 가난한 시민들’이라는 기사가 있다. 


  “서울역 위에 잇는 중앙서시장에서는 약 3-4일부터 조선의 명산물이며 계절미각의 으뜸가는 생선 청어가 동해바다 포항으로부터 매일 2-3백관 씩 입하되고 잇다 한다. 그런데 올겨울에 들어 처음이며 수송난 관계로 다량입하가 되지 않는 연고로 갑시 여간 비싸지 않다고 하는데(중략) 청어 한 마리의 소매갑시 백원 하고도 꼬리를 붙다니 생활난에 쪼들리고 있는 서울시민의 입맛만 득도꿀 뿐 월급쟁이와 가난한 궁민들은 엄도도 못 낼 문자 그대로 그림의 고기가 되고 잇다(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함).”      

    

  비료로 사용할 만큼 저렴했던 청어의 가격이 급등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청어의 생산량이 더욱 줄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치어까지 포획하는 어업방식의 문제와 환경오염을 꼽았다. 이로 인해 수십 년 간 그를 대신하여 꽁치가 과메기로 가공되었다. 근래에는 청어의 포획량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옛 청어 과메기의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메기 철이 되면 대량의 꽁치가 북태평양에서 부산을 통해 포항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구룡포 덕장으로 옮겨져 과메기로 가공된다. 포항 죽도시장 근처에는 과메기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그중 사십육 년 동안 과메기를 팔아온 해구식당을 찾아가 보았다(2018년 기준). 한때는 이곳의 과메기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이 문턱에서부터 2-30m의 줄을 만들기도 했다. IMF 때에는 모두가 힘든 시기였는데, 서민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소주와 과메기 덕분에 오히려 장사가 잘되었다. 한 접시에 오천 원하던 시절에는 쌀자루에 돈을 쓸어 담아 은행에 끌고 가기도 했다. 1980년, 90년대 이야기이다.       


2-30년 전만 해도 통과메기, 내장 같은 거 제거 안 하고
굴비 널듯이 말리거든. 그거는 보름에서 한 달 가까이 말려야 된다.
이십일 정도. 내장이 있으니까 오래 두고두고 말리지.
살이 발갛지. 영하로 떨어졌다가 녹았다가
이래 말려야지 맛있지. 노다지 밖에서만 말렸지.


  “5-6년 전까지는 대나무에 널어 직접 말렸다. 과메기 널고 하는 거는 영감이 다했지. 과메기 너는 거는 4-5일이면 다 말리지. 내장 잘라내고, 반으로 뼈 제거하고 널어가 말리거든. 그러면 머리 쪽에 자르고 껍질만 베껴 하면 되지. 2-30년 전만 해도 통과메기, 내장 같은 거 제거 안 하고 굴비 널듯이 말리거든. 그거는 보름에서 한 달 가까이 말려야 된다. 이십일 정도. 내장이 있으니까 오래 두고두고 말리지. 살이 발갛지. 영하로 떨어졌다가 녹았다가 이래 말려야지 맛있지. 노다지 밖에서만 말렸지. 냉장시설이 없었으니까. 요즘은 통과메기 구경하기가 힘들고. 꼬득꼬득해지고 베끼 내면 담백하지. 그거 맛본 사람은 배지기(생선의 반을 갈라 손질한 과메기) 안 먹는다.”          


해구식당 지영자님 어머님과 아들 김도형 대표


  한창때는 식당 안쪽의 큰 방에서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둘러앉아 꽁치의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껍질을 벗겼다. 과메기 한 두름을 손질하면 네 접시를 만들 수 있다. 손님이 몰리는 날에는 하루에 이삼백 두름을 손질했다. 아들 김도형(46세) 씨는 어린 시절 방안의 생선 냄새와 식당의 자욱한 담배연기가 싫어 과메기는 입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과메기를 대나무 발에 널어 말렸는데 지금은 스테인리스 봉에 말려요. 생선의 물을 쫌 빼고 발에 말리는 거는 대거리고, 발에 너는 거는 발 과메기라고 하죠. 대거리보다 발 과메기가 손이 더 많이 가고 대량생산이 어렵죠. 대거리는 안쪽으로 똘똘 말리거든요. 발은 꽁치가 쫙 펴지고 더 잘 말라요. 발은 바람이 위아래로 솔솔 잘 통하고, 대거리는 바람이 안 통하는 곳도 있어서 잘 안 마르기도 하죠.”


  김도형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일을 돕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해구식당은 현재 포장된 과메기를 유통만 한다. 하루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국에서 들어오는 주문만 소화해도 바쁘다. 과메기를 말리는 덕장 일도 그만두었다.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햇빛 보고 말렸던 전통 과메기 건조방식에서 위생시설 기준에 맞춘 까다로운 작업을 하려니 일손이 부족하다.      


  배지기 과메기는 생물이었을 때 머리 쪽에 칼을 대고 뼈를 중심으로 꼬리까지 살을 바른다. 양쪽의 살을 발라 꼬리만 붙어있는 생선을 세척하여 봉에 걸어 건조한다. 김도형 씨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짜가리(쪽, 경상도 방언)는 기름기가 많아서 삼겹살 맛이고 통과메기는 소고기 맛과 같다고 한다.     


  필자는 배지기 과메기를 청했다. 주인 할머니는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 기장미역과 노란 배추, 쪽파, 김, 마늘을 듬뿍 올린 초고추장으로 한 상을 차려주셨다. 과메기 쌈을 싸는 방법은 싱싱한 배춧잎에 야들야들 부드러운 기장미역을 올리고 과메기 한 점과 고추, 마늘, 초고추장으로 마무리한다. 그 색감에 군침이 돈다.   

   



  “맛있나? 꼭꼭 씹어 먹으면 맛있다. 과메기에는 기장미역이 가장 좋다. 과메기를 먹다가 탈이 나더라도 기장미역과 먹으면 아무 탈이 없다.”


  과메기의 윤기(潤氣)가 좔좔 흐른다. 잘 말린 과메기는 식감부터가 다르다. 뼈에 가까운 배 부분은 건조된 유막(油幕)이 생선살에 덧입혀져서 그 쫄깃함을 이가 먼저 느낀다. 등 쪽의 껍질은 기름기까지 모두 벗겨내야 비린 맛이 덜하다. 청어 과메기는 꽁치와 달리 특유의 은은함을 입안에 남긴다. 고소하다.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돌김에 싸 먹는 것도 방법이다.      


  10월 말부터 3월까지 바쁜 5개월 장사라지만, 4-5월에는 고추장을 담고 8월부터는 유통할 분량의 돌김을 썰어 준비한다. 가족에게 대접하듯 가장 좋은 쌈 재료와 맛있는 과메기를 포장하여 유통하고 있다. 그러한 정성으로 인해 손님들이 해구식당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나 보다. 인터뷰 내내 울리던 전화 벨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도움 주신 분]

해구식당은 포항 죽도시장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십여 년 과메기 식당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주인 할머니(지영자, 76세)와 아들 김도형(46세) 씨가 과메기를 포장하여 유통만 하고 있다.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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