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하는 삶을 견디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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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색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열등감은 쉬이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하루에도 서너 번은 고통받는다.
열등감은 때로는 한 곳에서 태어나 수십 가지로 갈라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일제히 생겨나 하나의 큰 파도로 합쳐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열등의 화살들을 막아내기도 하고 피해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해 맞아도 가면서 어디서 그것들이 날아오는지 찾아다닌다. 그렇지만 애써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당장 손에 쥘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후퇴를 한다.
잠재된 열등감은 아주 사소한 것만으로도 쉽게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한때 알고 지냈던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사이좋게 찍혀 있는 연인의 모습이, 나보다 먼저 직장을 잡은 동기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떠드는 모습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바닥에 누워만 있는 내 모습이, 한꺼번에 교차하고 혼합하여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친구의 자기소개 문구를 보고서 깨닫는다.
카톡을 지운다는 것, 그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현실과 단절하겠다는 것. 세상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리겠다는 의지의 표현.
열등감은 나를 타인과 비교하면서 나오는 부차적인 감정이다. 자아와 타자의 비교는 사람의 삶에서 무지막지한 비중을 차지한다. 비교라는 행위는 나와 세계가 교류할 때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등감은 자아가 세상과 어떻게든 끈을 이어가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가장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수는 세상을 나로부터 유리시키는 것이다.
그 친구의 의도는 물론 험난한 수험 생활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인간관계에 지쳐 휴식을 취하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핑계를 이용해 내 안에서 커져만 가는, 세상과의 끈을 놓칠까 두려워 생기는 이 열등감을 풀어보려고 한다. 조만간 나도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그 끈을 놓고 조용히 내면의 공간에 침잠하려고 한다. 그럴 용기가 있기를 소망한다.
사족. 열등감에 대한 생각 및 본문의 모든 내용은 순전히 필자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방구석 개똥철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