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사람이 별안간 문자를 보냈다. 제발 내 고견을 꼭 들어야겠단다. 그리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고견이라는 낱말이 퍽 가증스럽게 보였다. 높임말은 의외로 사람을 놀려먹을 때 좋은 말투다.
아무튼 연락해 주십사 하고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자기가 통화 가능한 시간대가 적혀 있었다. 이것마저 불쾌했다. 나는 이 시간만 가능하니까 알아서 고려 좀 해줘,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줘. 네 입 밖으로 그 말이 튀어나올 때까지 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할 거야. 네 휴대폰 요금은 내가 알 바 아니지. 내가 네 요금제가 표준 요금제인지 무제한 요금제인지 알 필요 있을까? 어차피 나 좋으라고 연락해 달라는 건데. 그래도 한 달 있으면 시험 볼 사람 붙잡고 전화한 건 미안하니까 이거나 받고 끝내자. 응?
안 좋은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해도 허사로 돌아가는 경우가 일반이다. 한번 뇌리에 박힌 이미지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바래지 않는다. 아마 몇십 년 정도는 지나서 얼굴에 검버섯 좀 피고 각종 만성 질환으로 의사를 닦달할 때쯤 돼서야 겨우 풍화될 것이다. 몇 개월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러나 그런 이미지가 자리 잡은 데엔 분명 내 잘못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해서 빠져나온(그렇다고 생각한) 관계다. 분명 어떻게든 실오라기 한 가닥이라도 이어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다. 확실하게 작두를 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인연은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게 이어져 간다.
지금은 네 시다. 오후 네 시. 다섯 시 반부터 일곱 시까지는 그쪽에서도 저녁을 먹을 시간이니 그때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닐 것이다. 물론 나도 저녁을 먹어야 하니 번거로운 일은 피할 것이다. 아홉 시 이후에,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마무리했을 때, 그때 전화를 하자.
징징거리는 이야기도 오랜만에 들으면 좀 재미지려나.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