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로미터라는 이름을 알기 전 오직원을 먼저 알았다. 추천서가 활동을 하면서 읽었던 책 '찌질한 김경희'. 퇴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 책방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는 가히 신선했다. 오직원은 그 책의 저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단순해져 살아본 적이 있나 질문을 해봤다. 돈 앞에서 심플하지 못한 것은 김경희 씨도 마찬가지였고 그녀만큼이나 찌질한 건 나 또한 못지않았는데 다른 점은 거창한 결과를 바라지 않고도 과감하게 소박한 삶을 산다는 것. 작은 서점에서 일하며 글을 쓰는 그녀의 삶은 부러웠다.
찌질한 김경희 씨가 오직원으로 활동하는 그곳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입구의 간판은 눈에 띄지 않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책방의 이름이 독립서점계에서 떨치는 유명세는 대단했다. 다정과 나는 언젠가 그곳을 가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우리가 책을 낸 후에 입고를 목적으로 실현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적어도 불과 몇 달 전인 그때는 그랬다.
다정의 첫 방문 입고가 이루어졌을 때 들었던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기분을 상상해보았다. 사장님이 빵도 주었다고 했다. 책을 기획하게 된 데에 궁금한 몇 가지도 질문하셨다고 한다. 작은 반김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고 시장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다. 오키로미터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커다란 중국의 꽈배기도 신기하고 쌓여있는 호떡들도 즐겁게 느껴지도록해주었다. 시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책방의 입구는 다정이 먼저 발견했다. 궁금했던 그곳 오키로미터 다섯 글자가 작고 귀엽게 입구에 붙어 있었다.
좁고 긴 빽빽한 계단이 서점의 입구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오키로미터 사장님은 사실 서울역 그림 도시 행사 때 뵌 적이 있었는데 '저도 곧 책을 낼 거예요.'라고 마음으로만 이야기하며 책을 고르는 척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마치 연예인을 실제로 본마음으로. 그로부터 일주일 뒤 입고 허락의 답메일을 받았을 때는 마치 시험을 통과한 학생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입고의 기쁨은 점점 옅어졌고 재고수를 확인하는 기쁨이 그 뒤를 이었다. 재고가 0을 기록하던 순간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재입고 여부를 물었고 이차 입고를 위해 책방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의 냉기만큼 내부는 깔끔하고 환하게 트여있었다. 좁은 계단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나는 먼저 입고를 하러 온 작가라고 입을 떼야되나 책을 고른 후 말해야 하나를 우습게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정은 가져온 우리의 책을 전해주며 먼저 소개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수원이요."
"멀리서 오셨구나."
"책 좀 보다 갈게요."
"네."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책방에 방문해서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사실 힘이 좀 빠졌다.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지만 다정이 만든 매일의 메일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우리는 길을 떠났었다. 책 표지에 있는 갈매기의 그림이 그려진 어깨 뒷부분이 말꼬리 같은 내 머리카락에 가려져 안타까웠는데 그런 마음은 애초에 먹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다정은 묵묵히 책을 골랐고 나는 할 말이 많았다. 서점 안에서 커피도 팔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밖에 나와 역 앞의 커피숍을 가는 것을 택했다. 할 말이 많았던 건 다정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설렘으로 왔던 시장길을 거슬러올라가 각자의 음료를 앞에 두고 우리는 방문한 소감을 나누었다. 김이 빠진 느낌이 있었지만 사실 그게 뭐라고 싶어서 느꼈던 감정에 대해 피력하긴 좀 부끄러웠다. 아직 나는 시작이고 그깟 호칭이 뭐 중요하단 말인가. 생각보다도 작았던 나의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앞에 놓인 수박주스만 홀짝홀짝 마셔댔다.
작가라는 것은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면허 갱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만 타인에게 불리고 싶었다. 그것은 내면에 존재하는 허락과도 같았다. 아이들이 '소영이는요 이랬어요.'라고 말하는 습관을 성인까지도 유지하는 기분이었다. 구글 폼으로 책을 구매해주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저자라면서 배송 문자를 보내는 마음은 그랬다. 누가 부여해주지 않은 자격을 스스로 만들어 칭하고 다니는 느낌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 역할을 죄 없는 오키로미터 직원들에게 기대했다니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한없이 작아져갔다.
언젠가 다른 서점 사장님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났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고. 자신은 소극적인 편인데 모든 사람들을 대화를 걸어주며 똑같이 대하기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일이라고. 방문한 사람들은 사장님이 누군가에게 더 친절하고 누구와 더 친했는지를 기억한 채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오키로미터에 방문한 느낌을 이해했다.
다정과 내가 만든 책은 한 달의 기록이라 얇고 작다. 세워서 꽂아 놓으면 아무도 못 볼지 모르고 흰색의 표지는 많은 책들 사이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키로미터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적절한 수의 입고된 책들은 빽빽하게 천장을 보고 누워있어 어떤 책들이 있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오키로미터에서 제일 빨리 책이 팔린 이유일 수도 있다. 모르고 지나치는 책이 없도록 하나하나 존중하는 분위기. 책방 문을 연지 한 시간도 안되어 여러 사람들이 보고 가는 데에는 그곳의 열정이 많이 투자되었다는 증거이겠지.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서점의 높은 텐션을 고요함 속에 숨기고 있는 듯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