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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Aug 27. 2019

자발적 출판. 그리고 그 후.

쓰는 생활

 어떻게 해나가는 게 좋겠냐고 첫 의논을 할 때 나는 재미있게 쓰면 된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텀블러 잔에 넘실대게 담겨있던 커피가 다 사라질 때까지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다정은 언제나 수첩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는 타입이었고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일단 가보는 타입이었으므로.

 출판 후의 마음은 어떨까에 대해서는 책을 본격적으로 만들면서부터 상상해본 것 같다. 모르는 타인이 내 이름 석자가 인쇄된 활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를 것 같던 마음, 누군가가 재미있었다 한마디 해주기만 해도 힘을 내서 무언가를 새로 쓰고 싶어 질 것 같던 마음은 오히려 출판 후 잦아들었다.

100부만 찍겠다던 책은 조금씩 마음이 바뀌어 300부를 찍게되었다.

 책이 완성되어 집에 도착했고 두 상자가 주는 무게만큼 현실감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책 두 권을 꺼내고 나서도 빽빽한 우리의 책. 다정의 몫까지 몇 권 제하고도 줄지 않는 우리의 책. 공동저자로 출판비가 반반 든다 해도 걱정은 오롯이 일 인분의 몫이었다. 서울역에 혼자 나갔던 날 숨이 가빴던 이후로 모든 방문 입고는 다정히 해결했고 약을 먹으면서 집안으로 숨어든 나에게 책방 방문기를 전달하며 그녀는 '작가님'이란 호칭에 설레어했다. 함께 듣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같이 서점에 갔더라면 정신과 약을 조금 더 빨리 끊을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했다.

 몇 군데에 입고를 하고 책을 우편으로 부치면서 나는 오히려 책을 내었다는 것에 점점 무감각해졌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은 우습게도 창작자의 마음을 먹게 만들었는데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아이들의 부모님 직업란에 주부 대신 '작가'라고 쓰고 싶어 졌다. 브런치의 내 소개란에도 에세이스트로 바꿀까 말까를 몇 번 고민하다가 아직 내세울 것 없는 이력에 그것은 오만이라고 지우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이제는 시댁 식구들의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나름 바쁘고 하는 일이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인가 싶어 조그맣게 기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에 대한 무감각증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그리고 어떠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쓰기 싫어지는 증상도 동반되었다. 다음 책을 빨리 내고 싶은 마음과 다음에는 무엇을 출판해야 하나 싶은 부담감이 공존하며 생각만 많아졌지만 몸은 마음만큼 움직여지지 않았다. 출판과 동시에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방학은 생활의 리듬을 180도 바꾸어 놓는다. 중학생이 된 첫째는 밤늦도록 게임을 하다가 동이 틀 무렵 잠들기 일쑤였고 그건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초등학생 티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는 막내도 그런 오빠들을 보며 잠들지 않고 놀았고 여름밤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새벽이 되면 라면을 끓여먹었고 점심때가 좀 지나서야 같이 눈을 뜨는 생활을 반복했다. 주부의 생활에는 방학이 없지만 엄마로서의 삶에는 방학이 있었다. 그건 어감이 주는 것만큼 한가한 시간은 아니었다. 더위에 지친 것인지 리듬이 바뀌어버린 생활에 지친 것인지 잠을 자도 피곤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밥을 하고 치우고 자고 또 밥을 했다. 간간히 막내의 방학숙제를 봐주느라 수학익힘책 한 권을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다. 그러고는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드는 생활을 반복했다.  

 창문을 열어도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을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게으름도 끝이 나고 매일매일 무엇을 써보겠다던 연초의 결심들도 하나둘씩 떠올리게 되었다. 불과 몇 달 전, 나는 몇 년이 걸려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동안의 기간은 주부로 지내면서 글쓰기를 연습하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고. 사람의 간사한 마음은 그런 결심들도 모두 뒤로하고 출판 이후로 작가로 불리고 싶은 욕심을 먼저 불러왔다.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약을 끊으면서 그간에 갖고 있었던 불순한 생각들도 털어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마음으로 돌아가니 조금씩 무엇을 쓰고 싶은 마음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다정과 함께 처음으로 서점 방문 입고를 감행하였다. 그것은 여름 동안의 짧은 방황을 마치는 첫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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