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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ul 26. 2019

매일의 메일

쓰는 생활

 몇 주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감정이 농축되는 순간도 만나지 못했고 무언가 짜르르하게 흘러 쓰고 싶은 시기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알아보고, 알아보고 또 찾아보았다.

 사실 나에게는 그간의 짧은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찾아왔다. 무심코 보낸 원고가 출판이 될 것 같은 시기가 왔다가 그게 무산되었음을 알리는 상대의 침묵도 경험하고.(애초에 출판될 것 같다는 정보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지만)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글을 써서 보여달라고 했었다. 쓰고 싶지만 쓰지 않았던 이유는 목적이 없어서였다.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던지는 것도 싫고 물가에 앉아 돌만 던지고 있는 기분으로 있는 것도 싫었다. 읽는 사람이 없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랬다.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누군가와의 소통이 중요했다.

 브런치가 통과되고 소통의 문이 조금은 열리나 했지만 그것은 정말 미미한 시작의 일부일 뿐이었다. 바닥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방문자 수 그래프처럼 내 마음도 저 밑바닥에서 꿈틀꿈틀 기어 다녔다. 표현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그녀는 본격적으로 써보자는 제의를 던졌다.

행궁동 까페에 앉아 우리는 첫 회의를 했다.

 그녀는 퇴사를 하고 무언가를 출판해볼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에게 그림을 그려 보낼 테니 메일로 답장을 달라고 했다. 여섯 시간의 차이를 두고 답장을 확인하고 보내는 일은 점점 아침 기상 시간을 앞당겼고 하루의 시작을 설레게 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쓰는 '목적'이 생긴 것이었다.

 어른으로 사는 삶은 칭찬과 도전에 목마르다. 겉만 자랐지 속은 어린이인 나는 더욱 목말랐다. 주고받는 메일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시간은 점점 밀도 있게 변해갔고 그녀가 귀국하던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 답장을 마치며 나는 다시 갈 수 없는 땅을 등지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감상은 잠시, 바로 현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쇄소에 견적이라는 것은 넣어보지도 못했던 나는 종이의 질량, 재질 그리고 인쇄방법 등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책 디자인, 편집 등을 도맡아 하고 나는 자잘한 그 외의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쓰는 시간보다 책을 만드는 시간은 더욱 길고도 어려웠다.

 표지에 그림이 생기고 색상이 변하고 표지 재질이 몇 차례 바뀐 후 우리의 책은 완성되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몇 번을 거듭 읽으며 수정할 곳을 찾았다. 인쇄소 사장님은 작가님들 까다롭다며 웃으셨지만 우리에게는 그만큼 간절했다는 반증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일은 점점 커져서 처음에 찍기로 한 부수를 훌쩍 넘어갔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서, 나는 일상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스쳐 지나갈만한 소소함 뿐이지만 나는 작디작은 것이 지닌 힘을 믿는다.  평범함이 주는 공감력을 믿는다.

인스타 @isoyoung0911에서 매일의 메일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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