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어딘가에 밭을 분양받아 일구어오고 있다. 처음 한 해는 어디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이었고 그다음 해는 같이 할 동지를 만나 한번 해봅시다였고 올해는 대체 농사를 왜 하지?라고 나에게 되물으며 시작한 한 해이다.
화분이라도 키워본 적도 없고 식물에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텃밭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그저 땅에 뿌리를 내리듯 어딘가에 마음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혼자 쪼그리고 앉아 흙을 만지다 보면 터진 방둑 같은 내 마음의 잡념들이 흘러넘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안 해본 것들을 해보자는 인생관이 투영된 선택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초등학교에서 분양해주는 텃밭에 농사를 지었다. 지금 보면 작게만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덜컥 분양받아버린 그때의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고랑을 내고 이랑을 만드는 것도 무슨 법칙이 있는 줄로만 알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나는 시아버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숨을 몰아쉬며 밭고랑을 내시고 감자를 심어주신 아버님은 농사를 지어보신 적 없는 도시남자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옛날 사람이라고 모두 농사를 지을 줄 아는 건 아니라는 것도.
막상 닥쳐서 시작해본 텃밭은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쑥쑥 자랄 준비가 되어 판매되고 있는 모종이란 것이 있으니까. 친구와 함께 텃밭을 하나씩 분양받아 시작해본 두 번째 해에는 나름의 시도도 하나씩 포함되기 시작했다. 모종을 갈라서 심어본다던가 씨를 심어본다던가 하는. 막내가 장난스럽게 심은 해바라기씨 하나가 쑥쑥 자라 얼굴만 한 꽃을 틔우고 소꿉놀이하듯이 바닥에 누군가 버린 옥수수알로 농사를 지었더니 정말 커다란 옥수숫대가 되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씨앗의 경이로움을 알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받은 상추씨를 뿌려놓고 잊어버렸는데 뒤늦게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는 농사의 묘미는 씨앗을 심는 데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청경채의 씨를 받기 위해서 꽃이 피었지만 놔두고 기다렸다. 다음해에는 청경채도 씨앗으로 심을 것이다.
씨앗이 들어있는 주머니이다. 한번 말려야 씨앗을 꺼내서 보관할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생명의 위대한 힘을 예찬하며 지낸다면 한여름에서 장마를 지나는 절기에는 생명이 지닌 힘에 두려워하게 된다. 토마토는 지지대가 튼튼하지 않았고 성장에 탄력이 붙으면 곁가지가 무섭도록 무성해졌다. 잡초는 매일이 리즈 갱신이었고 고구마는 순이 바닥에 닿으면 잔뿌리들이 징그럽게 달려 있었는데 그건 마치 쥐며느리 같은 모습이었다. 농약을 쓰지 않아 양배추는 텃밭의 달팽이에게 내가 기부해준 집이자 식량이었다.
폭풍 같은 여름의 시기가 지나면 심을만한 작물들도 별로 없고 정리해야 하는 임무를 끝낸 잔해들만 밭에 빼곡하다. 수확하는 기쁨은 짧게 지나가고 정리해야 하는 것만 많아지면 왜 농사를 시작해서 매년 이 귀찮음을 만들어내는지 자신에게 질문하다가 탓도 해보다가 한다. 쌈채는 모종이 있어 편했는데 가을이 되어도 차분히 무언가를 수확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해 보였다. 절기를 준비하고 한해를 빼곡히 두 평의 좁은 땅에 성실히 담아내는 느낌. 그런 느낌을 조금은 동경했는지 올해 세 번째 텃밭의 봄이 오자 나는 과감하게 조금 넓어진 텃밭을 시작했다.
시에서 분양해주는 시민농장은 다섯 평짜리 땅이다. 교육을 받고 텃밭에 관한 책들을 빌려보며 나는 전의를 다졌다. 무언가 비장한 마음으로 장화도 샀다. 물조리개는 그전에 사용하던 것은 장난감에 비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 커다란 조리개도 구매했다. 삼 년째 쓰고 있는 농사 가방을 들고 호미를 물에 씻으며 나는 점점 익숙한 옷을 걸쳐 입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는 걸어서 가면 되었지만 시민농장은 차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전보다 더욱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올해 나의 밭의 지지대는 튼튼하다. 장마가 곧 오겠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잡초는 수시로 제거해주고 있고 토마토들의 곁가지는 꾸준히 잘라내어 주고 있다. 오이, 가지, 땅콩, 브로콜리 등 처음 재배해보는 친구들도 가득하게 자라나고 있다. 씨앗은 역시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앞줄의 로메인이 빽빽하게 밭을 메우고 있다.
농사가 잡념을 많이 지워내주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쉬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 가고 홀로 풀을 매는 시간이 이제는 지겹지 않다. 호미를 들고 일하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막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며 나 자신과 조우하도록 해준다. 태초 원시의 인간으로. 물 주고 땅 파는 것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는 사람으로. 나는 어느덧 다섯 평짜리 밭에 맞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넓은 텃밭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