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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un 04. 2019

나도 생각이 있다고

일상생활

 사람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친정엄마는 자꾸 무엇을 정해 본다. 이뤄지지도 않을 일들. 해보라고 정해주기에는 이제는 홀로 선 지 한참 된 나이. 한 달간 뜨개질을 배워서 만든 가방을 자랑할 때는 "잘 만들었다!" 한마디면 대답으로 충분했는데 엄마는 여성 무슨무슨 센터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다더라 하는 말들을 꺼내었다. 여성 취업 지원의 일환이라고.

  

 명절날 책을 들고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네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라며 놀랐다. 글을 쓰는 학과에 지원을 하겠다고 고등학교 3년간을 수상실적에 목을 매며 백일장이란 백일장들을 다 찾아다니던 나를 엄마는 잊은 걸까. 아니, 어쩌면 뒤늦은 사춘기 소녀의 방황 같은 걸로 치부했던 걸까. 이른 점심을 먹고 긴 낮을 보낼 것을 대비해 들고 간 책 한 권에 엄마의 상상은 나를 도서관 사서로 만들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엄마의 진로 정하기의 끝은 항상 돈을 벌 수 있는가와 잇닿아 있다.  그리고 진로의 방향성은 얼마나 현실적인가가 기준이 된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주부로 돌아선 나는 엄마의 그런 시선 때문에 취업과 내 생활 사이에 선을 하나 그어놓고 발을 넣을까 말까 하며 어정쩡하게 서있다. 누군가 강요한 일도 아닌데 집에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마음속 무게를 쌓고 있다.

 

 딱히 어떤 진로를 마음속으로 그리고 나아가는 중은 아니지만 사실 나에게도 계획이 있다. 짧은 소설들을 모아 한 권을 내는 것. 얼마 전에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듯 글과 그림을 모아 책 한 권을 만들어보자는 계획까지 세웠다. 돈이 되는 무엇도 아닌데 가슴은 뜨거웠다. 중요 기밀이라도 맡은 듯 마음이 달싹거렸다. 작가가 되는 것. 그것은 어릴 적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꿈이었다.


 아이가 셋이 되었고 주부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친구들은 이미 팀장급일 나이에 나만 경단녀인 현실을 직시하라고 해서 당장 그들의 경력을 내가 가져올 수도 없다. 뒤늦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하기에는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을 돌아왔고 가고 싶지 않은 길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오히려 시간에 쫓기며 살지 않은 탓에 나의 당장의 미래보다는 길어질 노년까지도 생각해보았는데 국민연금을 내고 있지 않아 엄마의 염려를 사기에는 무언가 조금 억울하다.


 아이들 사교육비까지 절약해가면서 굳이 일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달달 히 들어오는 고정급은 나의 미래를 결정해주지 않는다. 내 앞으로 들어질 4대 보험도 나의 앞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올해가 시작된 지 벌써 5개월이 지나갔는데 그 안에 나는 조금씩 변해왔고 글도 써 모으기 시작했으며 읽는 마음에서 쓰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평생이 가도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라고 할 때도 있는데 한해도 가기 전에 이만하면 많이 이루고 사는 삶 아닌가. 어디에 속하지는 못했어도 내가 이끌어가는 삶 아닌가. 천상병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소풍을 왔으니 무전여행하듯 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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