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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Apr 18. 2019

실을 엮는 시간

만드는 생활

 하루에 잠시의 시간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보는 것은 상당히 새롭다. 특별한 성취감도 없고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의식주로 돌아가는 밋밋한 생활에는 가끔 이런 청량감도 필요하다. 그래서 시작해본 것이 원데이 클래스였고 다른 분야들로 겹치지 않게 신청한다. 글쓰기에서 시작해 목공을 거쳐 이번에 가본 곳은 마크라메 만들기였다.

 

 손재주가 별로 없는 나는 바느질이나 매듭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서툴렀다. 학창 시절 가정 실습평가로 주머니를 만들거나 소소한 어떤 결과물을 만들 때마다 실이 엉켜 고생을 하고 종종 밤늦게까지 낑낑대며 만들기 일쑤였다. 그리고 마음만큼 되지 않아 화를 내며 내동댕이 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차분함도 생기는 걸까. 손놀림이 조금은 노련해지는 걸까. 오늘의 나는 제법 잘 해냈다.


 인스타를 보다가 마크라메 작품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지중해 바다와 어울릴 것 같은 하얀 실들로 각자 다른 무늬를 만들어내는 작품들. 그물 같은 느낌인데 우아하다. 마침 마크라메 가방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고 원데이 치고는 비싼 수업료였지만 이끌리듯 신청하게 되었다. 가방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도 일부 작용한 건 사실이다. 내 취향대로 고른 색깔의 실로 짠 가방을 뿌듯하게 들고 다닐 생각만으로 시작하게 된 마크라메는 뜻밖에도 만드는 과정에 기쁨이 있었다.


 마크라메는 실로 이루어내는 뜨게 작품이다. 매듭을 짓는 방법과 배열에 따라 모양을 이루어내는데 실을 손으로 떠간다는 것에 있어서는 코바늘 뜨기와 비슷하다. 다만 코바늘 대신 손으로 매듭을 만들어나갈 뿐. 우리가 아는 가방들은 실로 꿰매거나 지퍼, 단추를 달거나 하는데 마크라메는 매듭에서 시작해 매듭으로 끝난다. 땅에서 자라나 땅속으로 돌아가듯이. 삶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듯이. 인위적임이 절대 섞이지 않은 매우 자연스러운. 온전히 실과 손가락만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여러 가닥의 실들을 같은 길이로 잘라 행거에 건다. 일어선 채로 평행을 맞추어 실을 엮어나간다. 배열이 같은 위치에 맞아떨어져야 가방의 모양이 예쁘게 잡힌다. 양손의 힘이 일정하게 잡아당겨야 매듭이 삐뚤지 않으며 그 힘은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하게 실이 그만을 외칠 때가 되어야 한다. 긴 실들이 손 안에서 묶이는 과정은 마치 하프를 연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 번도 하프를 만져본 적은 없지만 만약 연주를 해본다면 현의 뜯는 느낌은 이리도 부드럽고 찰랑찰랑하게 손끝을 스쳐갈 것이리라. 연주에 빠져들듯 단순한 방법으로 계속 엮어나가는 과정은 리듬감이 있는 몰입감에 젖게 한다. 집중하는 동안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갔고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머릿속을 자국 없이 지우개로 싹 지운 것처럼.


 네 시간 남짓 서있다가 집에 돌아온 후 저녁을 준비했다. 만드는 동안 못 느꼈던 피로를 집에 가서 느끼실 거라던 강사님의 우려와는 달리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솟는다. 노래를 부르며 분리수거를 하고 아이들을 씻긴다. 화도 안 내고 문제집을 푸는 것을 옆에서 봐주었고 모르는 문제는 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쓸 것이 있는 날은 신이 나고 글이 잘 써진 날은 힘이 나서 집안일을 하는 요즘의 나는 정말 뭐하는 사람이지 싶다. 몇 시간의 배움으로 기운이 나는 마음도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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