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박하며화려한 Mar 26. 2019

소소한 오해들

일상생활

 우아한 목소리에 교양 있는 자세. 평탄하게 살아오신 줄 알았던 그분도 삶의 굴곡들이 있었다. 남보다 괜찮은 직업, 더 나은 경제사정 그런 것들은 고통의 깊이를 재는 기준이 되어주지 않는다. 얼마다 힘든지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가늠하기 힘든 것. 최근에는 부동산 업자와 크게 다투었고 며칠 동안의 보일러 고장으로 자잘하지만 머리 아픈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나오는 따뜻한 물에 인생 별거 없다며 이런 게 행복일 거라고 웃으셨다.


 긴 여행에서 얼마 전 돌아온 그녀도 편치 많은 않았다. 남편이 이해해 주었냐는 질문에 내가 했던 걱정들과 그녀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한 달간의 외국여행은 남과 다른 케이스가 그녀에게 준 인생 특혜가 아닌 현실 속에서 굳은 의지로 일구어낸 보상이었다. 주변에 많은 이해와 배려를 받으며 자신의 인생을 지켜가는 것은 그녀도 갖지 못한 판타지였다. 올해 안에 세 개의 나라를 돌아보겠다는 그녀의 생각은 계획대로 순항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남편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결심 그 중간쯤 어디에서 그녀의 마음은 섬처럼 떠있다.


 살면서 쌓아가는 소소한 오해들. 이런 환경에서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저런 주변 사람들을 만났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 모든 것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단면들이다.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세상 안에서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세 여자는 한 달만의 모임으로 할 말이 많았고 이야기는 카페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그곳은 집 앞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으리으리한 한옥 카페이다. 밤이면 가옥의 곳곳마다 불빛들이 빛나는 용궁 같은 집. 막내는 공주님이 살 것 같은 궁궐이라고 말했다.


 처음 카페가 개업하던 날 기다리고 있던 곳이 문을 열어 급한 마음에 들어갔었다.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사람 없이 텅 빈 가게는 오픈 첫날의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정리 중이었다. 빵 종류는 얼마 없었고 가격은 비쌌다. 엄마로 보이는 주인 사장님이 아직 정리 중이니 있는 빵들 중에 골라보실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잠시 둘러볼 수 있었는데 딸과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는 마감시간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역시 연륜이 있으신 분이 장사 마인드도 다르시다는 생각으로 빵을 골랐고 마카롱을 덤으로 주시는 바람에 기분은 신났지만 기대보다 종류가 없어서 맥이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그곳은 처음부터 한옥이었다. 카페가 생기기 전에는 갈빗집이었고 새로 매입한 누군가가 다시 고쳐서 베이커리 겸 카페를 오픈했다. 인테리어 변경 과정을 보니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역시 대자본이 돈을 낳는다고 투자한 만큼 장사가 꽤 잘되었다. 맛이 없고 종류도 없으며 비쌌다는 나의 첫인상과는 반대로 그곳은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한가한 시간이 없이 주차장은 좋은 차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돈 좀 있는 아주머니께서 아이들과 함께 오픈한 가게려니 했던 내 생각은 오늘 우리의 모임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면서 바뀌게 되었다.


 입구에 있는 사진 속 일본 제빵 코스를 완수하셨다는 제빵사분은 혹시 실존 인물이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게 했었다. 뒷정리는 사장님의 몫이었고 낮에 그곳을 들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만 빵을 만들고 퇴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낮에 들러본 그곳은 전혀 달랐다. 흰색 제빵사 복장을 입은 분들이 주방에 가득했고 직원만 해도 족히 이십 명은 넘어 보였다. 제빵 회사였다. 가격이 높았던 이유도 낮에 들러서 본 후로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내가 보았던 빵 종류는 그저 몇 개 남아있던 것들이었고 훨씬 많은 종류의 희한한 빵들이 많았다. 그리고 맛도 달랐다. 맛이 없었다고 후기를 전한 주변인들에게 그날 밤 맛이 있었고 빵 종류도 많은 곳이었는데 가격은 조금 센 편이라고 수정된 정보로 다시 전달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오해하는 습성 때문에 나는 자신에 대해서도 보지 못한 면들이 있었다. 알고 지내는 캐나다인 할머니의 초청에 혼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녀가 커피를 마시면서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온갖 매너와 교양이 배어있는 그분도 용기 내어 함께 떠나길 추천하셨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아이들의 학교와 밥 세끼, 남편, 고양이 화장실, 벌려놓은 자잘한 일들-예를 들면 텃밭이라던가 일주일에 한 번 수업받는 뜨게질 수업, 그리고 앞으로 듣게 될 생활영어수업-이 발목을 잡는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비행기표는 모아둔 비상금을 넘는다. 남편에게 일주일 이상의 헌신도 모자라 비행기표까지 끊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고 일탈을 꿈꾸는 마음이 나에게도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가정 안에서 가장 편안한 주부의 모습으로 잔잔하게 사는 것을 바란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에 대한 또 하나의 소소한 오해였다.


 일탈을 하게 될지 포기할지는 하루의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살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들은 참 많았다는 것이고 자신마저도 다 알지 못하기에 누구를 보아도 어떤 상황을 만나도 넘겨짚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모든 것은 비슷하고 또한 다르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점처럼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던 풍경들도 다르게 보이고 작게 보던 것들도 크게 보였다. 마음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작가의 이전글 헛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