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박하며화려한 Mar 22. 2019

헛걸음

일상생활

 시에서 분양해주는 텃밭을 받기 위해서 사전교육에 참가하러 갔다. 교육은 3일간. 하루만 참석하면 되기에 친구와 같이 첫째 날에 가자고 했다. 모든 처음에 끝을 보는 게 편하니까. 점심을 배가 터지게 먹고 오천 원짜리 밥을 사준 것을 사천 원짜리 커피로 되받아 길을 나섰다. 식당에 밥이 너무 잘 나와서 체중은 꼼짝도 앉는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먹은 만큼 오늘은 걷기도 할 것이기에. 도착지까지 우리는 걸어보기로 했다.


 하천 근처에 꽃나무는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특혜로 벌써 꽃이 피었다. 따뜻하지만 바람은 태풍이라도 오는 것처럼 불어대는 날씨. 아이러니한 기후를 몸으로 느끼며 감고 나온 머리에 먼지가 다시 달라붙겠다고 말했다. 햇볕을 받으며 걷는 길은 그래도 즐겁다.


 텃밭을 분양받던 날 가본 관공서 건물에 도착하자 잡상인이라도 부르듯 급하게 경비아저씨가 잡아 세운다. 역시 백팩을 메고 오는 게 아니었나. 짧은 순간에 복잡한 생각들이 겹친다.

-텃밭 교육을 받으러 왔는데요.

-문자 다시 보세요. 여기 아니에요.

 목적을 말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었다. 교육장소는 이곳이 아니시청이었다. 문자를 확인할 때 몇 줄만 더 내려보면 알았을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똑같은 글을 읽고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난독증인가라며 답답해할 때가 많았다. 말도 안 되는 댓글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왜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읽는지 의아했다. 참을성 있게 찬찬히 읽어본다면 쓴 사람의 의도를 중심까지 파악할 수 있을 텐데. 최근에 많아진 난독증 사례 중에 하나가 이제는 나도 포함이다. 다른 장소에서 교육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날짜와 시간만 확인한.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성미. 상대방의 마음 바닥까지도 닿아보지 못했으면서 '뻔하다'라는 표현으로 이때껏 얼마나 단정 짓고 살아왔나.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잘못된 도착지를 되돌아 나오면서 이걸 웃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마음은 잠시 고민했다. 내가 단편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고 데자뷔처럼 과거가 떠오른다.


 어딘가에 수업을 받으러 갈 때도 그랬다. 지도는 다른 곳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 곳에 그런 게 위치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며 혼자의 판단으로 찾아갔다. 결과는 당연히 엉뚱한 곳. 비닐하우스들 사이로 들어가니 생각지 못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댁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혼자 생각한 질문들에 답을 내리는 것은 자신이었다.  


모르는 길을 갈 때에는 눈을 열고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귀를 여는 자신이 되기를.


 타인의 말에 상처 받거나 사소한 일들로 관계가 뒤틀릴 때. 의도를 모르면서 이럴 것이다 내린 가정들로 감정이 저 끝까지 내려앉을 때. 혼자만 아는 사실 같은 상상들은 꼭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진실은 모르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렸다면 다른 결말들에 도달했을까. 문자를 차분히 내려  읽었으면 헛걸음하지 않았을 오늘처럼. 알지 못하면서 성급한 자신을 깨우치기라도 하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멀게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 순댓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