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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Mar 13. 2019

순댓국

먹는 생활

 순댓국 한 그릇이 주는 든든함과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풍족함에서 삶의 여유를 발견하는 한 작가를 보고 나도 순댓국을 먹으러 간다. 그녀는 순댓국은 원래 좋아했던 음식도 아니고 20대 후반의 아가씨가 혼자 먹으러 가기에는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고 했다. 포장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든든히 먹어두여야 할 때나 종종 생각이 날 때마다 집에 가져와서 먹게 되었다고. 책을 읽던 시간은 자정이었고 나는 갑자기 허기가 지는 마음에 집 앞  24시 순댓국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누구에게나 힐링 푸드가 하나씩 있다고 한다. 그녀는 순댓국으로 정했다. 나에게도 위안을 주는 음식이 있었나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먹는 것은 다 좋아하는 편이라 특별히 무언가를 먹을 때에 행복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이 상했거나 혹은 당분간 먹지 못하는 일이 있을 때에 의식을 치르듯 먹어야 하는 음식을 하나 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분에 따라서 먹고 싶은 음식은 다양해지지만 '나는 무엇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필요했던 이유는 삶의 색깔을 정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럿이 밥을 먹으러 나갈 때 나는 어떤 음식이든 괜찮다고 말한 지 꽤 오래되었다. 요즘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취향도 확실하고 자기만의 색깔들이 있다. 살면서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드문드문 든다.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너는 어떠냐고 말하고 싶어 졌다.

 인생의 작은 모험처럼 일단 다른 이들이 추천하는 접해본 적 없는 음식들을 먹어보기로 했다. 얼마 전 양꼬치를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중국 음식에 들어가는 고수의 향을 싫어하는데 그래서인지 모든 중국 음식의 향신료 냄새가 다 좋지 않게 느껴졌었다. 양꼬치는 맥주와 먹으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가까운 지인이 알고 있는 양꼬치집이 있는데 그곳은 냄새도 안 나고 맛있다 하여 생일을 맞이해 한번 가보게 되었다. 작은 꼬치라 얼마나 먹어야 배가 부를 수 있을까 했는데 보기와는 달리 얼마큼 먹다 보니 배가 불렀다. 그리고 맥주와 어울린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느끼함을 지니고 있었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맛있었던 기억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여자 둘이 매운 것을 먹으며 기분을 달래는 장면이 간혹 있다. 이처럼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큰 행위다. 행복이란 것은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다가가는 한걸음의 시작은 좋아하는 음식을 찾는 것이다. '최애 음식(최고로 애정 하는 음식)'을 찾기 위해서, 행복한 삶에 다가기 위해서 나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기로 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직접 해먹는 음식이라는 이야기에 주인공 친구는 요리를 시작했다. 떨치고 싶은 기억일 수록 음식의 재료는 점점 더 매워진다.
매운 고추 기름 떡볶이를 먹고 스트레스를 날리려했지만 매워도 너무 맵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가장 큰 재래시장에 순댓국집 골목이 있다. 자정에 뛰쳐나가고 싶었던 유혹을 접은 기억은 한동안 마음에 맴돌았다. 집 앞에 순댓국집이 있었지만 굳이 재래시장을 택한 이유는 그 음식이 어울리는 장소에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가서 먹은 순댓국은 아는 맛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의미가 있는 맛이었다. 나만의 힐링 푸드로 순댓국을 정하기로 했다.

 각자 한 그릇씩 먹는다는 뿌듯함은 마음이 부유해진다. 여러 개 시켜서 나누어 먹는 것보다 각자의 몫을 깨끗하게 비우는 과정을 좋아한다. 부부여도 자식이어도 각자의 맡은 인생이 있다. 혼자 이루어낼 과제들이 있다. 내 앞에 놓인 뜨거운 뚝배기 안을 비우는 과정도 그렇다. 서로의 빈그릇을 보면서 우리는 웃었다.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다.

 더 가지는 것은 무슨 의미이고 덜 가졌다는 것이 주는 결핍이 무엇인가 자문하고 또 자문하며 걸음을 나섰다. 요즘 들어 조급해져 버린 마음과 미래에 대한 답도 없는 불안감을 조금씩 가라앉혀 본다. 삶의 모습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기대라는 이름의 나쁜 버릇을 겹겹이 쌓고 있을 때 종종 또 먹으러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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