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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Mar 12. 2019

이상한 빈티지 잡화점

일상생활

 쓰다만 펜, 길이가 다른 낱개 크레파스, 옛날 피겨. 한 개에 천 원 또는 이천 원. 집에서 봤다면 천덕꾸러기 같이 굴러다니다가 고양이 발에 차이는 시끄러운 장난감이 될 것이 뻔해 벌써 버렸을 물건들. 무엇하나 신기할 것도 없는데 구경을 하고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가게 앞 매대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져오시면 교환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는 가게 진열장에는 도라에몽들이 주욱 일렬로 늘어서 있다. 모든 물건들이 도라에몽 군단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것 같다. 판매 물건의 종류에는 분명한 카테고리가 없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장님 내외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급히 작은 봉고를 근처에 대고 부랴부랴 물건을 진열하기에 바빴다. 그 모습이 즉흥적으로 보였고 왠지 오늘만 장사하고 사라지는 가게가 아닐까 하는 신비감마저 주었다.

 가게 앞은 인산인해로 들어갈 곳이 없다. 쓰러져가는 양철지붕에 허술한 창이 다인 콘크리트 건물은 내부가 좁았다. 젊은 커플들은 빈티지한 가게라면서 칭찬을 했고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낡은 부츠와 가죽 가방 같은 것은 이만 원대. 보기보다 고가인 것에 의아했지만 별거 아닌 것들이 눈요기가 되어준다는 것에 있어서는 사장님의 판매력이 예사는 아니라는 걸 짐작해볼 수 있었다.

 작은 화단에는 낡은 호미가 흙을 파는 도구라는 용도를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흙에 박혀있다. 이천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이제 4월부터 시에서 분양해주는 텃밭에 농사를 해볼 참이라 눈이 간다. 집에 호미가 두 개나 있으면서도 센스가 넘치는 진열 방식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사소한 물건들이 가격표를 달고 매대에 있는 것은 느낌이 새삼 다르다. 집에 돌아와 버리려고 꺼내 두었던 물건들을 찬찬히 뜯어본다. 짐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진 이후로 주기적으로 버리는 일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조용히 바라보며 마음의 가격을 매긴다. 상처가 나서 혹은 더 이상 쓰지 않아서 쉽게 쉽게 눈앞에서 치워버릴 생각만 했던 건 아닌지. 싫증이 나서 나만 가치 없다 생각한 건 아닌지. 자랑하며 살지는 않아도 자신 있게 살아야 하는데 아직 정지해서 사는 듯한 느낌을 나만 떨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세히 보아야 어여쁘다 했던가. 버리지 못한 물건에도 내 마음에도 새롭게 가격표가 붙는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가치가 없을 수도, 무가치하다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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