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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Mar 09. 2019

사랑의 냄새

일상생활

 어떤 영화의 제목에도 있듯이 사랑의 모양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20대 초반의 사랑이 가장 예쁘게 느껴진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단어가 주는 깊이감이 무언가 더 숭고한 울림이 있을 때에 쓸 수 있는 표현인 것 같고 '예쁘다'라는 말이 가장 적당하다.

 젊은 연인을 보면 '너네는 좋겠다 연애하고.'라고 생각하던 때가 나도 있었는데. 이제는 한참 사춘기인 아들이 여자 친구가 언제 생길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아들의 연애는 어떤 모양일지 상상한다. 결혼식을 가면 슬슬 신랑 신부보다 파란색 한복을 입고 동분서주하며 가끔 눈물을 찍어내는 시어머니 쪽이 더 눈이 가는 것을 보면 나의 청춘도 벌써 저만큼 떠나가나 보다.

 충무로를 지나는 4호선에서 어떤 젊은 커플이 전철을 탔다. 깔깔 웃음을 쏟아내면서 지하철 앞칸의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간다. 내 옆을 지나는데 어떤 향기가 훅 끼쳐온다. 사랑의 냄새다. 톡 쏘긴 하지만 젖을 방금 물린 아기 입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언젠가 뽀송한 빨래를 개다가 언뜻 맡아본 냄새 같은데. 전철의 창문으로 그들이 비친다.

 아직 둘 다 까만 코트를 입고 있지만 그들은 봄이다. 여자가 깔깔거리며 남자의 웃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뚜껑의 형식이 간편한 게 눈에 익은 모양이다. 파란색의 안경 쓴 펭귄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즐겨마시던 뽀로로 음료수. 막내는 뽀로로 음료수 소다맛에서 벗어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대의 건장한 청년이 마개를 뽁 잡아당겨 마신다. 내가 맡은 사랑의 냄새는 저것이었다.

 옆에 있는 커플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짝 웃었다. 싱그러운 젊음이 후각을 통해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잠시 놀랐는데. 역시 말이 안 되는 상상이었나. 음료수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들은 여전히 달다. 단내가 난다.

 거울을 보다 보면 화장실 조명에 정수리가 반짝 빛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요즘 들어 점점 눈이 간다. 멜라닌 색소가 빠지다 만 것처럼 바랜 머리카락인 줄 알았는데 속을 헤쳐보니 흰머리가 한 움큼씩 나온다. 이제 새싹처럼 돋아나는 것도 있고 이미 절반이나 기어 나온 것들도 있었다. 나는 염색할 궁리를 한다.

 -나이를 억지로 숨기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보기 안 좋아요. 오히려 다 하얀색이라 멋있는데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모두 하얘진 우리 어머님한테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미용실에서 제대로 염색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 번도 미용실에서 해본 적 없는 나는 결국에 마음만 먹다가 다이소에서 제일 저렴한 염색약을 샀다. 까만색을 사려다가 이번에는 가장 밝은 노란색을 집어 들었다. 갑자기 전철 안에서 맡았던 단내가 코끝을 스쳤다. 까맣고 굵은 내 머리카락에는 갈색으로 밖에 색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가장 밝은 색'에 위안을 느끼며 계산을 했다. 이제 내 머리에도 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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