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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Mar 06. 2019

친절에 대하여

일상생활 

-친절하게 대해줘.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오며 자란 이야기. 주변 친구들에게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우리들은 친절하게 대하도록 들어오며 자란다. 친절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약해진다. 나는 유독 그런 점이 심한 편이라 친절한 사람에게 나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하는 편이다. 거절을 해야 할 때면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의 주변에는 여러 유형의 친절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친절의 행위는 의도적이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행위를 마음은 어떻든 간에 '친절'이라는 단어로 엮어서 설명해 보겠다. 동기와 상관없이 모든 부분에 친절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그 단어가 가진 가치가 아깝지만. 

 먼저 '본태성 친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얼굴만 봐도 선하다. 말을 곱게 한다. 상대의 마음이 다칠까 봐 종종 걱정한다. 타고난 그들의 친절은 다수가 있을 때 빛이 난다. 낯선 사람 앞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그들은 솔선수범하며 친절의 행위를 나누어준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밥을 나누어 먹는다거나 모르는 타인에게 먼저 다가간다거나. 모든 이들이 좋아할 타입이지만 사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들이 나에 대해 갖는 진심이 몇 프로인지 자꾸만 저울질하게 되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중요한 타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둥글게 사는 그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갖지 못하는 부분을 갖고 있는 그들을 시기하는 마음일 수도 있지만. 

 두 번째로 주위에 많이 존재하는 '가장된 친절'이 있다. 그들은 주변인들 중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친절의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친분을 통해서 얻어가려 하는 여러 목적들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가입해주기를 바란다거나 친분을 통해서 어떤 소소한 도움들을 줄 수 있는 환경에 있다거나.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한참 후에나 깨닫는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서 끝 맛은 씁쓸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보호본능으로 가장된 친절을 쉽게 장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는 불편하다. 하지만 처음에 그들에게 가졌던 분노는 점차 이해심으로 바뀌어가는 부분도 있다. 그들은 나에게 잘 핑계 대는 법과 이유 없이 다가서는 사람은 한 보 물러서 관찰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인과성 친절'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좋아한다. 그들은 친절한 이들이 사실은 아니다. 각자의 개성들이 있다. 까칠하거나 수줍음이 많아 표현을 못하거나 이기적이거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대화들이 상대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거나. 그런 이들을 대하다 보면 서서히 그들이 갖는 개성들이 내 앞에서는 무뎌질 때가 온다. 상대에게 마음을 열면서부터 내어주는 친절. 나는 그런 친절을 사랑한다. 시간이 걸려서 다져진 관계에서 나오는 친절은 솔직하다. 그런 마음에는 의심이 들지 않는다. 물론 여러 사람들을 더 겪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나의 인생에서는 그랬다. 

 -언니 요즘에는 뭐하면서 지내요. 일해요 아님 집에 있어요? 운동은 계속 다녀요?

 드문드문 연락이 와서 근황만 물어보는 별로 안 친한 동생이 있다. 우리는 따로 만나지 않는다. 만남을 그쪽에서 잡으려 해도 내가 피한다. 만남의 이유가 내가 무언가에 가입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바로 가장된 친절. 오늘 가장된 친절을 가진 그녀가 연락을 해왔고 본태성 친절을 가진 이도 연락을 해왔다. 반갑게 톡을 보낸 가장된 친절에게는 한참 후의 시간을 들여서 답장을 했고 본태성 친절을 가진이의 연락에는 바로 답을 해주었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마음들에 둘러싸여 살고 종종 부딪힌다. 관계성을 의심하지 않고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지 않던 어린 시절이 가끔 그리운 생각이 든다. 막내딸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어쩔 때는 삐지기도 하면서 지내는데 흑과 백의 마음만 또렷할 뿐 중간의 마음이 없다. 나쁠 때는 나빴던 거고 화해하면 다시 좋아진다.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이 생겨 소홀해져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런 단순함이 그립다.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것은 마음에 단단한 껍데기를 입게 한다. 몇 번의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은 보호막이 되어주고 현명하게 대하는 법을 알게 해 준다. 삶의 연한 부분들은 단단해진 껍데기 안에 잘 간직하면 된다. 그러고 보면 관계 사이에서 서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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