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흰색 계열의 옷은 언제나 사기가 꺼려진다. 아무 색도 없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어떠한 얼룩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축적된 때가 변색을 일으키는 것 앞에서는 장사가 없어 항상 어두운 색의 옷을 사고는 한다. 특히 아이들 옷을 살 때는 더더욱.
사람이란 간혹 곁길로 새보며 걸어갈 때가 있는 터라 나도 가끔은 아이들 옷으로 흰색을 살 때가 있다. 한 번은 딸의 웃옷을 흰색으로 산 적이 있는데 그 디자인은 흰색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후드와 팔까지 밤색으로 되어 있고 몸통은 흰색이라 두 색상의 조합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멋쟁이 엄마들은 다 화이트 칼라로 사가시더라고요. 역시 그걸 선택하시네요.
점원 언니의 직업의식이 투영된 한 마디도 작용을 하긴 했다.
처음에 옷을 사 왔을 때는 아이가 입고 벗으면 혹시 못 발견한 때가 있는지 살펴보며 애지중지 했다. 손으로 애벌빨래까지 하면서. 하지만 피곤하거나 바빴던 날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때가 늘어났고 결국은 다른 옷들과 함께 쉽게 빨래통으로 던저버리는 옷으로 후드티의 신세는 전락해버렸다. 처음과 같지 않은 색상은 '남들도 입다 보면 다 그러니까'하는 변명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더니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락스이다.
락스는 독한 만큼 강력하다. 흰색의 얼룩들을 지우는 데에 락스만 한 것이 없었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락스로 곰팡이 때를 지우고는 했다. 요즘 친환경 세제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큰일 날 이야기지만 숨이 좀 막히고 청소를 마칠 때쯤이면 가쁜 숨을 내가 더 몰아쉬고 있다는 것 빼고는 나의 결혼생활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 구멍 난 고무장갑을 끼고 사용하다 가끔 손이 따끔거릴 때도 있었다. 독한 것은 유해하고 유해한 것은 중독이 강하다.
아이의 후드티를 화장실 세면대에 펼쳐놓고 면봉으로 락스를 살짝 묻히고는 살살 문질러봤다. 락스는 한 방울만 떨어져 묻어도 색상이 있는 부위를 변색시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락스의 변색은 후회보다도 빠르다. 이번에도 효과를 발휘할 줄 알았던 락스가 웬일인지 힘을 쓰지 못한다. 얼룩이 그대로 있었다. 지워질 것과 지워지지 않을 것의 구분은 힘들다. 눈으로 보면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우리들의 상처도 그렇다. 지워질 줄 알았는데 어떤 특효약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고 지워진 줄 알았는데 가슴속에 남아있다가 어느 날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멈칫하며 눈물이 되어 툭 떨어질 수도 있다. 나도 변했다고 이제는 성숙했고 같은 상황이 되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장담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같은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주저앉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발끈거리며 별거 아닌 것에도 화를 낸다.
몇 년 안 되는 나의 사회 초년생 시기는 아직도 드문드문 기억이 날 때가 있다. 2차 병원 간호사로 병동에서 일했던 나는 3교대를 하며 밤샘근무를 할 때도 많았다. 환자들은 간호사의 덕목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들 사이에서의 덕목은 일을 빠르게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빠르지 못했다. 행동이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꼼꼼하고 생각이 많은 것으로 좋게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내 발목을 잡는 단점이었다. 병원을 그만두고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느리다는 것은 나에게는 비난의 화살 같은 것이었다. 남편이 별생각 없이 '당신이 하면 오래 걸리니까 설거지 내가 해놓을게.'라고 말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일상생활에서 뭐든지 빨라야 하는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느리다는 단어는 나에게 욕 같은 존재였으니까. 사회 초년생 시기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상처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의 사이는 좋았으나 결혼이란 서로만 맞추어간다고 해서 굴러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의지와 다르게 흘러간 상황들, 내 생각과 다르게 나왔던 반응들은 농축이 되어 한데 어우러져 내 마음 깊은 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된 사람들을 만나거나 드라마를 통해서 보게 되면 눈물이 나고 분노가 일었다. 이제는 괜찮아라고 장담했던 마음들은 사실은 괜찮지 않은 것이라는 건 죄 없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알았다.
결국 후드티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빨래 비누를 통해서 해결했다.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손으로 박박 문질러 빠는 것이 정답일 때가 있다. 산다는 문제는 종종 우리에게 힘은 들지만 정면 돌파를 요구한다. 보글보글 일어나는 거품 때문에 생기는 착시인가 싶어 물로 헹구어 보았더니 확실히 얼룩이 연해지고 있었다. 물이 닿으니 못 보았던 얼룩들이 여기저기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았구나. 마치 돌보지 못한 마음처럼. 기모가 들어간 옷이라 손빨래는 힘이 들어 발로 밟기 시작한다. 발가락 사이로 치유의 거품들이 뽀르르 솟아 나온다. 내친김에 묵은 때가 잔뜩 끼어있는 양말들도 가져온다. 세탁기에 양말을 넣으면 당최 빨래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양말 바닥의 얼룩은 까만 그대로 어쨌든 빨래를 했네 하면서 널게 된다. 양말은 작아서 손가락이 쓸리도록 비벼야 한다. 불빛에 비춰보니 양말 고유의 색으로 돌아온다. 속이 시원하다.
다섯 식구라 항상 세탁물이 많은 우리 집은 일일이 손빨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쩌다 한 번의 손빨래는 묵은 때를 없애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세탁기에 던져 넣느라 바쁠 테지만. 지워진 얼룩을 보면서 마음 또한 편해지는 것을 보면 손빨래도 가끔은 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