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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Mar 01. 2019

소설 쓰는 저녁

일상생활

 안 가본 세계에 발디뎌보려는 발걸음은 바쁘다. 일 년 365일 중 한 달에 한 번씩이라고 친다면 한 해 동안 열두 번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원데이 클래스. 저번 목공 후기에 이어 이번에는 소설 쓰기다.

 시작하는 시간은 다섯 시부터였지만 내 마음은 두시부터 바빴다. 무얼 해놓고 가면 아이들이 스스로 잘 챙겨 먹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을 챙겨놓고 첫째 아이가 궁금해하는 요즘 핫 아이템, 미역국 맛 라면을 사다 놓는다. 엄마의 부재가 드러나지 않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후에야 나간다고 화장을 좀 해본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자기도 분장을 하고 싶다고 한다. 괜히 속이 뜨끔해서 눈썹을 그리다가 펜슬을 떨어뜨렸다.

 모르는 타인들 속에 섞여서 무언가를 써본다는 건 처음 경험하는 자리다. 게다가 서로 쓴 것을 공유할 텐데. 나름대로 어떤 내용을 써볼까나 머리를 굴려보았다. 현실 같은 등장인물의 이름도 대충 떠올려본다. 어차피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소설 짓기 시간이지만 한 가지의 이야기를 결말까지 구상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살아있는 기분이다. 일상적이지 않는 시간. 살아있는 시간이다.

 아슬아슬하게도 정각에 도착해 모임 장소에 들어갔다. 주차를 잘해놓은 건지 불안하여 창밖에 자꾸 시선이 갔다. 골목 안에 보석처럼 콕 박혀있는 그곳은 작은 간판 하나 있는 서점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러 들렀다가 차도 마시고 책도 읽다 온 적이 있었는데 삐걱거리는 옛날 주택의 철제문을 두고 세상과 분리된 기분을 얻고 돌아왔었다. 이번에도 삐거걱 소리와 함께 다른 세상을 열고 들어갔다. 클래스를 진행해주시는 소설가 한 분, 참가자 셋.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자신도 참여하고 계셨던 서점 사장님. 우리 다섯 명의 여자들은 조용한 음악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써 내려갔다. 야생의 냄새가 느껴지는 가지채로 받아서 끓였다는 민트 티, 바닐라 크림 탄산수, 세 병의 병맥주와 함께. 오늘은 맥주와 함께 글 쓰는 밤이다. 글의 주제 역시 맥주, 겨울밤. 날씨는 어느덧 겨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봄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 기억 속의 겨울밤은 다시 싸늘한 공기로 글 속에 채워지고 있었다. 스토리를 서로 공유할수록 이야기는 몸집을 부풀려갔고 완결을 보지 못함에 아쉬워하며 완성 후에 꼭 공유하기를 약속했다.

 

내 이야기 속의 나는 잠시 혼자였다. 겨울밤 퇴근길에 맥주를 사 가지고 집에 들어온 혼자의 여자.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의 외도 같은 상상은 나를 현실 속에 더 잘 뿌리 박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꿈틀거리는 글맥의 어딘가를 어렴풋이 짚어보고만 온 나는 앞으로 더욱 재미있는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뛴다. 유리병에 말아 가져온 못다 쓴 이야기가 시작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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