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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Sep 04. 2019

세상의 모든 계절

일상생활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행사에 다녀왔다.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그녀의 책을 구매했고 내가 쓴 책을 선물로 주었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는 몇 분간 심장이 놀랍도록 고동쳤고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앞사람이 작가님과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어줄 수 있냐며 핸드폰을 건넸는데 마치 심령사진처럼 나온 것을 후에 확인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로 서른일곱 아줌마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수전증이 있지만 잘 찍어볼게요라고 말한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설레는 누군가를 실제로 보고 만난다는 것. 이처럼 좋아하는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사실은 다행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영화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담고 있는 내용이 사계절에 맞추어 흘러가듯이. 모두가 주인공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상적이었다. 대사가 없이도 행동만으로, 표정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게 만들었다. 어느덧 나는 저 사람의 말 없음 혹은 이 사람의 말이 많음 등에 감정이입을 하며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고 이야기에 젖어들게 되었다.

 모두가 뚜렷하지만 굳이 주연을 정하자면 사이좋은 부부 한 쌍이 나오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톰과 제리'이다. 톰과 제리에게는 각각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친구가 한 명씩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톰의 친구 켄. 직장에서 만나 친해진 제리의 친구 메리. 나방이 빛에 이끌리듯이 외로운 그들은 톰과 제리의 집이 품고 있는 온기에 이끌려 찾아온다. 메리는 톰과 제리의 집에서 살아가는 일원이 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를 구매했을 때는 델마와 루이스 같은 행복을 얻을 거라고 믿고 모든 기쁨의 이유를 차로 돌렸으며 불행했을 때는 모든 슬픔의 이유가 고장이 잦고 안 좋은 일들만 불러오는 차의 탓이라며 불평했다. 톰의 친구 켄은 이제 직장 말고는 연고도 없을 마을에 홀로 사는 외로움을 토로하면서 거대한 덩치의 어깨를 들썩이며 아이같이 울었다.

켄은 기차에서도 맥주를 마시고  톰의 집에서도 마신다. 과자를 먹고 음식을 먹어대는 그의 안에는 외로움이 산다.
메리는 밥은 해먹지 않지만 집에는 와인이 있다. 제리의 집에서도 와인을 마신다. 불안할 때도 담배를 피우지만 대화를 할 때도 담배를 피운다.


 늙어가면서 사람은 외로워진다. 외로워서 이기적이게 되고 내 감정을 먼저 생각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대게 상처를 주게 되는 사람은 제일 가까이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던 이가 될 경우가 많다. 보듬어주던 사람도 상처를 받으면 한발 물러선다. 상대의 외로움은 안타깝지만 자신의 마음 또한 지키기 위해서. 메리의 비뚤어진 마음을 안 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해 거리를 두는 제리를 보면서 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왜 너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한 것이냐고 운명에 묻기 전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보다는 톰과 제리의 타인을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마음은 화려하진 않지만 견고하게 일상에 녹아든 행복에서 나온다. 톰과 제리가 만일 부부가 아니고 각자 혼자 살았어도 지금과 같았을까 상상해보았는데 내가 내린 답은 같았을 것이다였다. 그들은 둘이 함께하는 삶이었을지라도 자신들만의 확고한 삶의 규칙이 있었다.

 영화 속 사계절에 맞추어 톰과 제리는 농사를 짓는다. 텃밭을 일구고 건강한 토마토를 먹으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각자의 책을 읽는다.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한다거나 젊음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술과 담배를 권하는 메리와 켄과 달리 언제나 따뜻한 차 한잔을 끓여주던 것처럼. 그것은 자연스럽게 희어진 제리의 머리카락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크게 웃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다. 자신들만의 일상이 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안다.

 나의 정수리에도 자꾸만 자라나는 흰머리 몇 가닥이 생겨났다. 뽑아도 자꾸 돋아나는 그 자리. 친구가 짧은 흰머리가 있다고 깜짝 놀라 말해주었다. 염색을 할 때가 되었나 보라고 답하려다가 그냥 웃는다. 나도 사계절의 흐름에 묻혀서 살아보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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