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적는 글
"
지난겨울은 유독 추웠다.
운 좋게 튼튼하게 태어나 잔병치레를 안 해봤더니 오히려 건강에 대해 안일했다.
기억이 닿는 한 독감이라는 걸 지난겨울 처음 걸려봤는 데 대충 참으면 되겠지 하고
병원도 안 가고 버티다가 재발해서 후유증 포함 거의 두 달을 넘게 앓았다.
두 달 만에 체중이 8kg이 빠졌고 갑자기 눈에도 이상이 생겨 노안 비슷한 게 왔다.
아니, 사실 노안이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체중이 8kg 빠졌다고 했더니 아둔한 동생 놈은 다이어트가 돼서 좋다며 잘 유지하랜다.
줘 패고 싶었다.
몸이 안 좋은 걸 가족에게 알리길 포기했다.
새로 이사한 집이 오래돼서 그런가 유독 외풍도 심하고
난방을 아무리 해도 집안 온도가 잘 안 올라가 패딩을 입고 살았다.
집안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자괴감까지 겹쳐 마음도 괴로웠다.
진짜 봄이 안 올 것 같았는데 여기저기서 벚꽃축제 소식이 들려오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차갑기만 하던 우리 집 온도도 서서히 올라갔다.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따뜻한 날씨에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니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좋았다.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게 많아 불만이 많았는데
지난겨울 된통 당하고 보니
잘 보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고, 잘 뛰고,
아니 그냥 이 나라에 태어난 것만으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어느 탈북민께서 북한 동포분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얘기하시는 걸 봤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시며
남한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천복'이라 하셨다.
천복이 무슨 말인가 했다니 '천벌'의 반대말로 쓰신 단어였다.
천복을 누리고 살면서 천복인 줄 모르고 살다가 지난겨울 천벌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눈이 예전같이 안 보인다고 투덜대면 더 큰 벌을 받을 것 같다.
파란 하늘, 따뜻한 바람, 벚꽃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