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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남우 Nov 15. 2021

그 누구도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이러다 틀딱 소리 듣는  아닐까 싶어요.'


  앞에 계셨던 분이 말씀하셨다. 별로 친하지 않은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틀딱'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면 평소 그의 언어에 혐오와 차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 당당하게 '나는 노인 혐오자입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이 문제를 인지하기까지 또 얼마나 오래 걸릴까, 이러한 사람들이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까 하고 힘이 빠진다. 어두운 미래를 인지한 것마냥 절망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나. 내 말을 듣고 교수님이 할 말이 너무나도 많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사람들이 모든  클릭의 속도 맞물려 생각한다고 지적하셨다. 디지털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도 클릭  번으로 창이 바뀌는  같은 빠른 변화를 바라고, 버퍼링이 길어지면  더딘 변화를 마치 가망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가지, 우리 모두가 혐오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없음 강조하셨다. 머리로는 혐오가 안된다는  알지만, 과연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 안에 차별 지수는 0'이라고   있을까?


   3년 전 나를 떠올려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떠올려보기도 전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화이트 워싱을 비난하면서 내 피부 톤 보다 더 햐안 톤으로 화장을 했던 내가 완전히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기존의 혐오와 더불어 새로운 혐오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세상에 살며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아무렇지 않게 혐오 표현을 하는 이들과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분리 지어 생각했던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3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생각이 짧은 게 창피한 줄 몰랐던 나를 변화시킨 건 외면하고 침묵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내 옳고 그름을 지적해 준 사람들이었다.

  이러다 틀딱 소리 듣는  아니냐는 사람 앞에서  그저 침묵했다. 침묵이 무지 보다 비겁하고 가망 없는 사회로 가는 이었음을 깨달은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물을 것이다. 틀딱의 의미에 대해, 당신이 노인이 되었을  어린 친구들이 당신을 보며 틀딱 지나간다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일  같은지에 대해. 누구도 혐오와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없는 세상에서 내가 해야  일은 선을 긋고 침묵과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 물어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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