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 전시회
Henri Matisse : Life and Joy
<앙리 마티스 : 라이프 앤 조이>
앙리 마티스의 몇몇 작품 옆에 QR코드가 안내되어있다. 코드를 인식하면 아티스트 정재형이 내레이션 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예전엔 작품 안내는 무조건 사람이 해줘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노이즈 캔슬링 한 상태에서 오디오를 듣는 동안 신세계를 경험했다. 작품과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
전시는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무렵 '흰색 방'에서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확실히 촬영 가능한 공간부터는 소음이 생겨나니까 전시를 가볍게 관람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전시는 깊은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앙리 마티스 작품의 주된 정서인 삶의 기쁨을 따라 여유롭게 감상하고 느끼면 그만이다. 생각보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오신 어머니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나도 나중에 아이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또 배움의 선을 내가 미리 정하지 않고 이러한 문화생활을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속도에 맞춰 감상하고 중간에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다'라고 속삭이는 것도 예술이 주는 배움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기쁨이란 우리 주변의 색을 알아보고 떠올리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잔상을 따라 그리는 그림
앙리 마티스는 모방과 재현을 벗어난 예술을 지향했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모델을 자세히 관찰한 후 빠르게 스케치를 마쳤다고 한다. '대충 그린 듯한' 느낌이 나는 건 실제로 스케치에 시간을 얼마 소요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충스러움(?)은 투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쉬워 보이는 그림이지만 쉽지 않은 그 독특함이 앙리 마티스의 개성을 톡톡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작업 방식을 알고 나서 대상을 보고 그릴 때와 잔상을 따라 그릴 때 차이를 생각해보았다.
그가 아무리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어도 그 대상을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관람객이 그림에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방과 재현이 가져다주는 건 놀라움밖에 없다.
반면 화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잔상을 따라 빈 종이에 대상을 그려나갈 때, 그림은 대상을 향한 화가의 애정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 애정이 선의 두께에서 드러나고 그림에 독보적인 느낌을 만든다.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 선들 사이로 나있는 빈틈 때문인지 작품을 보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색을 채우고 있었다. 전시는 그렇게 마티스가 대상의 틀을 주면 관람객이 자신만의 색을 입히는 과정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