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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남우 Sep 07. 2021

Relish this remarkable ride

명작을 여러 번 봐야 하는 이유

   내가 명작을 몇 번이고 보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주옥같은 대사들을 어디 적어서 암기하기는 싫고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싶어서.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서 누가 그 작품을 얘기할 때 나도 봤다는 리액션과 함께 열띤 토론을 하기 위해서이다. 명작은 볼 때마다 다른 메시지를 준다. 근래 주변에서 영화 <어바웃 타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길래 오랜만에 두 번째 관람을 했다.







   처음 <어바웃 타임>을 봤을 땐 개봉일 당시 극장이었다. 그때 팀이 시간을 되돌려 메리와의 잠자리를 반복하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었다. 생긴 거와 다르게 변태 같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봤을 때 역시 충격이었다. 조금 억울한 면에서 그랬다. 여러 경우의 수에 따른 결과와 느낌의 차이를 시간 여행을 한 사람만이 기억할 수 있다니(게다가 그 능력이 남자에게만 있다니). 그 장면에서 문득 메리는 팀과 나눈 세 번의 사랑 중 어느 순간이 가장 좋았을까 궁금해졌다. 방에 들어오려다 구두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 앞 후크 푸는 법을 몰라 당황해하던, 그 첫 번째 모습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한 번의 시간 여행 후 좀 더 자연스러워진 두 번째가  좋았을까. 제일 격정적이었던 마지막이 좋았다면 다행이다. 메리는 마지막만 기억하니까.





시간을 초월하는 것들에 대해


   모든 영화에는 뒤 내용의 시작이 되는, 소설의 5막 구조 중 ‘발단’에 해당하는 장면이 있다. 언뜻 보면 <어바웃 타임>의 발단은 21살이 된 팀이 아버지로부터 시간 여행 능력을 깨달은 순간인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 장면은 이 영화가 ‘판타지’ 장르라는 예고와 집안 남자들만이 시간 여행 능력이 있다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메리가 팀에게 자신이 케이트 모스의 팬이라는 걸 얘기한 순간부터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팀이 메리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온 집에는 극도의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해리가 있었다. 그날은 배우의 대사 실수로 해리가 쓴 연극이 망한 날이었다. 그를 위해 팀은 시간을 되돌려 결국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냈으나 메리와의 만남이 전부 뒤틀려버렸다. 팀은 그녀의 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우연히 케이트 모스 전시회 기사를 보고 그녀가 케이트 모스 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그렇게 둘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두 번째 첫 만남을 가졌다.


  이쯤에서 사랑이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화번호는 까먹어도 그녀가 좋아하는 건 기억하는 것. 비록 팀과 메리의 재회에는 시간의 조작이 있었지만, 시간 여행을 거치지 않았던 둘의 첫 만남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첫 만남 장소가 ‘블라인드 바’로 설정된 데에는 왠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블라인드 바’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암흑이다. 외적인 요소의 개입 없이 오로지 대화 만으로 서로에게 끌린 팀과 메리는 어쩌면 서로의 영혼이  끌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운명적 끌림으로 처음 본 남자에게 케이트 모스 팬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팀이 그걸 기억하기까지, 그 ‘우연’ ‘필연’이 되기까지, 이 모든 건 ‘우연’이 만든 것이다.    



   17살의 나는 영화 후반부에서 시간여행의 불필요성을 느끼게 된 팀이 의아했었다. 내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 능력과도 같아서 기한을 두지 않고 평생 써먹을 것 같았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완벽함이 무의미하다는 걸 나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샬롯의 등에 오일을 발라주려다 쏟았을 때, 메리네 부모님께 ‘저희 오럴 섹스는 안 해요.’라고 말실수했을 때, 메리와의 첫날밤 엉성함을 보였을 때··· 팀이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되돌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상대에게 더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자 함,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동생 캐서린은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미 보통 사람들 모두가 위기를 겪으면 다시 일어나고 그렇게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팀은 이제 시간 여행의 필요를 잊었다. 메리와 함께 매일 같이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야말로 극 중 대사처럼 ‘우리 모두 시간 여행 중(We're all traveling in time)'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멋진 여행을 최대한 만끽하는(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수밖에. 가족은 서로 완벽할 필요가 없고 빈틈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임을 그들로부터 배웠다.



 버거<A X에게>  아끼는  구절이 생각난다.   '완벽한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결점들이지.'  우리 일상은 이미  자체로 엉망진창, 빈틈, 허점 투성이라는  모두가  알지 않을까 싶다(아까 만두를 먹을  젓가락 짝짝이로 집어먹었던  생각난다). 그리고 인간은 정말 사랑하는 대상에겐 기꺼이 빈틈을 드러내는 존재이자,  결점에서 매력을 발견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다른 정자가 착상되어 아이도 달라진다는 설정은  기준 영화  가장 유의미한 장치이다. '사랑' 행위가 낳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의 잉태.  영화에서 시간도 어찌할  없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었다.


    처음에 ‘명작은 매번 다른 메시지를 준다’고 하였지만, 사실 그건 작품이 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알아서 받는 것이다. 개봉일에 <어바웃 타임>을 보고 극장을 나오며 17살의 나는 휴대폰 메모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 사랑'. 똑같은 영화를 본 23살의 나는 ‘시간을 초월한 불완전한 존재, 그게 인간이고 우리’라고 적었다. 같은 작품을 n-1 번째, n 번째 관람할수록 감상에 깊이를 더하는 것은 나의 성장이 아닐까 싶다. 명작을 여러 번 봐야 하는 세 번째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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