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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남우 Oct 07. 2021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하루키가 쓴 에세이를 한번 읽어보세요.


  그때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하루키가 쓴 에세이를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한 말은 작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내 감상만 가지고 작가를 판단해버리는 건 굉장히 어리석었다. 더군다나 나에게 별로였던 소설이라면 더욱 그 몇 편으로 작가를 정의 내리면 안 되는 거였다. 네 말을 듣고 에세이는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작가의 체험과 생각으로 꽉 채워진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라는 '사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키가 쓴 에세이 제목은 하나같이 내 취향이었다. 그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재미없는 대화를 고문이라고 느낄 정도로 괴로워하는 점이 나와 똑같았다. 하루키 에세이는 일기 같은데 독자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게 느껴진다. 자기 얘기만 쉴 새 없이 하는데 독자가 끼어들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그 자리에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끝까지 읽었다. 출간일은 보니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3년에 출판된 책이었다. 긴 시간이지만 체감 속도만 놓고 보면 짧은 그 숫자에 꽂혀 생각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초콜릿이 강렬하게 당긴다던 하루키는 어쩌면 지금은 초콜릿을 달고 살 수도 있겠다고, 거울 속 주름을 봐도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했던 그가 지금은 거울 보기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며 혼자 추측했다. 자기가 쓴 대로 사는 건 힘든 것이기에. 사람은 한결같을 수 없다. 8년 전 16살 때 내가 쓴 일기를 보면 다른 사람이 썼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금의 난 많이 부지런해졌다. 갑자기 지금의 하루키가 궁금하다. 검색해 보니까 올해 5월에 <무라카미 T>라는 에세이가 나왔다. 역시 제목이 내 취향이다. 다음엔 그 책이 또 한 번 내 다리를 아프게 할 것 같다.


  작가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인터넷이 아닌 책을 통해 알았다는 기쁨이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그때 내게 해 준 말 덕분에 이제는 공감하지 못하는 작품을 만나도 등 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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