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만큼 좋은 회피도 없다
'그럴 수 있지.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까.'
온화함을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말이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떠도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문장 세 가지>에도 이 말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만큼 좋은 회피도 없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굳이 하지 않고도 이해한다고 느끼고 만족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간혹 깊이 있는 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 말을 들을 때면 명치에 돌덩이가 놓인 것 같은 기분과 약간의 속상함이 든다.
예를 들어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어쩌다 결혼정보업체라는 게 생겨났을까? 그건 그 사람의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질문을 쏟아낼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상대가
'그건 비난할 수 없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라고 하면 내 입은 다물어지고 명치에 돌이 얹어진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명제는 인간사 그 어느 상황에서도 들어맞는 당연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반박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근거가 될 수 없다.
각자 고유한 생각, 가치관, 정체성이 있음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전제로 해야 할 부분이고, 중요한 건 '그래서 왜 그 사람은 그러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까?'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에 다시 '그럴 수 있지.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까.'라고 말한다면 말한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 명치에 얹혔던 돌덩이들은 이것저것 궁금해하고 분석하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내 바람이,
상대가 지극히 당연한 말을 근거로 내세우며 내 생각 회로를 전부 차단시켜버리는 것 같은 속상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