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을 떼어주는 일이란
갑작스레 쓰는 일기는 오늘 회식에서 일기 얘기가 나와서. 국어 강사 세 명 그리고 영어 강사이자 그림에 조예가 깊은 원장님이 모이니 흡사 독서모임 다녀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어디에 있지 라고 자문하는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할애하고 나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없음을 느끼는 성취와 허무 사이 어딘가 말이다. 물론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달려온 이의 ‘나는 어디에 있지’를 지금의 나는 모른다.
타인의 힘듦은 항상 내것보다 거대하게 느껴져서, 나의 힘듦은 언제나 ‘진짜 힘듦’보다 아래에 있다. 아마 난 영원히 진짜 힘듦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야근이라 불러 마땅한 상황도 야근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즐겁기도 하다. 최근에 학원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싶어서 투잡도 그만 두었다.
중등부부터 고삼까지 지도하는 원장님은 그분의 자기 존재를 향한 방황을 십분 이해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타인보다 소홀하게 여겨서가 아니고 일에 진심이기 때문이라고, 일을 대하는 자세에 사명감이라는 말이 더해진 결과라고 했다. 시간을 비롯해 내 모든 걸 아이들에게 쏟는 마음을 살점을 떼어주는 일로 비유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있지, 하고 둘러보면 나는 그 아이들에게 가 있는 것이다.
하성란 작가의 문장 중 ‘바람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지? 나뭇잎이 흔들리면 바람이 거기 있다는 증거.’가 떠올랐다. 이전에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아이들이 마치 처음 말하는 것처럼 내게 들려준 기억도. 그 이야기의 출처가 나라는 걸 까먹은 구슬 같은 눈도 말이다. 원장님 말씀을 듣고 내가 뱉은 말과 건넨 지식이 날아서 흩어지는 일에 더 자부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