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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21. 2021

납작한 글자는 '우리'가 된다.

마음을 글자로 옮겨 적으면 마음도 함께 납작해지는 기분이 든다.

21.11.21


마음을 글자로 옮겨 적으면 마음도 함께 납작해지는 기분이 든다. 말의 운율과 어감을 없애면, 글자를 적은 이의 진솔함과 읽는 이의 메마른 목소리만 남는다. 그 고요한 침묵이 좋다. 어떤 말도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 목소리로 하기 힘들었던 말도, 상대의 목소리를 빌어 그대의 머릿속에서 울리게 한다. 간혹 운 좋게 가슴까지 떨어지는 말도 있을 것이다. 밑줄 속에 살아남아 다시 한번 읽히는 말도 있고 말이다.



내 글을 누군가 읽을 때,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따라가며 읽게 된다. 글 속에 나의 생각과 상대의 음성이 함께 하게 된다. 나의 경험과 그대의 기억이 만나 새로운 추체험이 만들어진다. 시간을 벗어나 함께 요동치는 기다란 밧줄처럼 하나로 엮인다. 서로의 글을 보여주고 마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우리가 된다. 



주중에도 그렇지만 주말이면 마감으로 인해 더 바쁘게 글을 쓴다. 특히 이번 주에는 세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두 편의 서평을 쓰고, 한 편의 에세이를 정성 들여 썼다. 쓰고 나니 에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또 나의 것이 아닌 글을 써 놓았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에세이를 마음 다해 썼다. 고통을 직면하고 글자 속에 괴로움을 꺾어 넣는다. 이 에세이를 퇴고하면서 또다시 전혀 새로운 틀을 갖췄다. 퇴고에만 열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정성 들여 에세이를 쓰는 것은 읽어주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마음 다해 읽어줄 누군가 말이다. 납작한 글자를 보며 깊은 고뇌와 고통을 함께 나눠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너무 오랜 시간 화면 앞에 앉아 있었더니 눈이 침침하고 온 몸이 뻐근해 온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브런치에도 글을 올릴 수 있고, 누군가 소리 없이 '라이킷'을 눌러주고, 누르지 않더라도 스쳐 지나가며 내 글을 봐주는 사람들에게 큰 감사함을 느낀다. 글을 쓸 수 있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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