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밀고 가서, 이중 주차된 차량끼리 접촉사고가 났다
<당나귀와 소금장수>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소금을 등에 지고 가던 당나귀가 시냇물을 건너다 넘어지는 바람에 소금이 모두 녹아버린다. 짐이 훨씬 가벼워졌다는 걸 깨달은 당나귀는 다음날에도 일부러 시냇물에서 넘어지는 꾀를 낸다. 아마 당나귀는 자신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자신이 소금 장수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 존재인지 으스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당나귀의 임무는 짐을 운반하는 것이고, 소금을 잃은 당나귀는 더 이상 소금장수 옆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다음 날 당나귀가 운반해야 하는 짐은 솜이었다. 물에 녹는 소금과 달리 솜은 물에 닿으면 훨씬 무거워진다. 베개나 이불을 빨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무게가 얼마나 상당한지 세탁기에서 수평 오류 메시지가 나기 일쑤다. 그러나 자만한 당나귀는 또다시 시냇물에 넘어져 짐을 가볍게 만들려 한다. 실제로 당나귀는 기억력이 높아 장소, 방향, 사람, 명령, 사건들을 기억하고 한 번이라도 걸어본 길은 나중에 다시 알아본다고 한다. 그러나 당나귀가 알지 못한 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수이다. 솜을 지고 가다 물에 빠진 당나귀는 처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힘겨울 정도의 짐을 지고 가야 했다.
사람의 지능은 어느 정도일까? 어쩌면 당나귀 세계에서 필요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의 지능 테스트를 한다면 당나귀도 사람을 보고 '꽤 지능이 높다'정도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우스운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른 아침부터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우리 집 인터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음량이 '아주 굉장히 크게' 모드와 '진짜 너무 커서 옆집까지 들릴 정도로' 모드가 있다. 물론 '아주 굉장히 크게' 모드로 되어 있지만 티브이에서 뭘 봤는지, 우리 집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귀신 퇴마를 시행한다며 초인종을 꼭 두 번씩 누르고 온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온 집안을 울리고 인터폰 근처에 서 있는 날엔 고막에 이상이 생기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떨려온다. 그런 인터폰이 아침 일찍부터 울려대니 이불속에서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이던 첫째가 무섭다며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둘째도 작은 몸뚱이를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윽고 전화벨도 울려댔다. 인터폰과 전화벨의 이중 공격 속에 이른 아침 단잠은 순식간에 짜증으로 변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아파트는 이중 주차에 시달리는 단지이고 종종 차를 빼주러 주차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상대 차주분은 하얀 숏패딩을 입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화가 많이 나있었다. 상황을 보니 상대차의 후면 범퍼와 우리 차의 후면 범퍼가 살짝 맞닿은 상태였다. 우리 차 앞에 자신의 차가 같이 이중주차 되어 있었는데 우리 차 범퍼가 본인 차의 범퍼를 쳤다는 것이다. 누군가 차를 빼려고 이중주차된 차를 밀다가 접촉사고를 낸 채 그대로 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흰 숏패딩 차주는 우리 차의 과실이라며 보험회사와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흰 숏패딩 차주는 굉장히 흥분하고 화와 짜증이 폭발해 있는 상황이라 사실 대화가 거의 되지 않았다. 본인 남편이 말하길 어떠하고, 이 피해 상황에 대해 우리 차에 과실이 없음을 직접 증명해야 하고, 뭐 대충 그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분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아직 누가 가해자인지 밝혀지지도 않은 마당에 왜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걸까? 게다가 같은 아파트에, 같은 주차장을 쓰고 언제든 또 마주칠 수 있는 이웃 주민인데.
나는 흰 숏패딩 차주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상황파악부터 했다. 핸드폰으로 내 차와 상대방 차, 그리고 그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와 인근에 있는 차들까지 영상으로 남겼다. 상대방 차는 앞 뒤로 내 차와 또 다른 차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 아파트에선 아주 당연한 일상이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흰 숏패딩 차주의 차와 그 앞에 있는 차 사이의 간격이 5센티미터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원래 차를 이렇게 바짝 주차하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 차가 앞 뒤로 많이 밀린 것 같아요. 저희 차만 밀린 게 아니라요."
흰 숏패딩 차주는 자신이 그렇게 바짝 주차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또 한차례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화가 왜 이렇게 많이 나셨어요?"
쉬지 않고 랩처럼 말을 쏟아내는 그분께 물었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아니요. 화 안 났는데요."
그분은 화가 많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상황 파악을 먼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블랙박스 있으세요?"
나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사실 우스웠다. 겁먹고 긴장하고 당황한 그 사람의 심리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싸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가여운 심리적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그쪽 블랙박스를 봐야죠. 우리 차가 아니라. 그쪽에서 증명해야죠. 우리 차 블랙박스는 후면은 안 찍혀요."
화가 안 났다는 그분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저희 차는 배터리 때문에 블랙박스를 원래 잘 꺼놔요. 그리고 저희 차도 어차피 후면이에요. 그런데 여기 CCTV 있으니까 관리사무소 가서 확인하면 다 나올 거예요. 가서 보시죠. 저는 괜찮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아까 출근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떡하죠?"
나는 감정 없이 오히려 친절하게 말했다. 상대의 태도와 무관하게 원래의 내 모습으로, 그 사람의 감정은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그러자 흰 숏패딩 차주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말도 줄었고 필요 이상의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CCTV 확인 결과,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우리 차가 상대의 차를 친 게 아니라, 상대의 차가 우리 차를 쳤다. 더 정확히는 이렇다. 아침 일찍, 출근을 위해 나온 검은 패딩을 입은 남성이 우리 차도 아니고, 흰 숏패딩 차주의 차도 아니고, 흰 숏패딩 차주보다 더 앞에 있는 차를 밀었다. 그 차가 밀리면서 뒤에 있던 흰 숏패딩 차주의 차와 닿았다. 그리고 그 여파로 흰 숏패딩 차주의 차가 우리 차까지 밀려왔다. 검은 패딩 남성은 차가 세 대나 닿게 된 상황까진 파악하지 못하고, 제일 앞의 차와 흰 숏 패딩 차 사이의 간격만 벌려 놓곤 떠났다.
잠시 뒤, 현장에 나타난 흰 숏패딩 차주는 자신의 차와 우리 차가 맞닿은 걸 확인하곤 우리 차가 자신의 차를 박았다며 노발대발 화를 낸 것이다. 출근해야 하는데 어쩔 거냐며, 보험회사도 부르고 경찰도 부르겠다, 무죄 증명은 직접 하시라 하면서. 그리고 내 추측이지만, 실제론 없을 것 같은 '남편'의 존재를 들먹거리면서 말이다.
다행히 차를 민 검은 패딩 남성의 얼굴과 차량 번호를 정확히 찍혔고, 바로 인적 사항이 나왔다. 바로 인자하고 중후한 우리 옆집 아저씨말이다. 아들 둘을 키우는 나로선 이웃 주민들에게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이고 지고 산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옆 집은 수험생 딸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우리 집에 시끄럽다고 찾아온 적도 없고, 집 앞에 놓인 킥보드나 잠자리채도 눈감아 주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어른이라고 느낀다. 분명 불편하고 참기 힘든 상황도 있었을 텐데 몇 년 간 살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흰 숏패딩 차주는 보험사를 불렀다. 경찰도 나중에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직접 플래시를 비춰가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영상으로 남긴 기록들을 보면 차에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맨 앞에 차도, 흰 숏패딩 차주의 차도, 내 차도 말이다. 사실 이중주차가 일상인 아파트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밀리고 밀리다 보면 닿을 수도 있다. 사실 차량 상태로 보면 흰 숏패딩 차주의 차가 가장 오래되고 낡고 저렴한 차였다. 게다가 차량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들도 보이고 잘 관리된 차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타는 차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두세 시간의 실랑이 끝에 집에 들어와 보니 아이들의 허물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사실 내가 흰 숏패딩 차주를 만나는 동안 가장 신경 쓰인 건 아이들이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아이들의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나왔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이 집 바로 앞이라 첫째에게 둘째 유치원 등원을 부탁하고 나갔는데 부서진 식빵 조각들, 바닥에 눌어붙은 딸기잼,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내복이 아이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둘째는 수저통도 챙기지 못하고 나갔다. 식기건조대에 아이용 수저가 그대로 있었다. 안 봐도 뻔했다. 머리도 안 빗고, 양치질도 안 하고, 옷도 대충 주워 입고, 얼마나 망나니처럼 하고 나갔을지.
지끈 거리는 머리로 소파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흰 숏패딩 차주에 대한 괘씸함과 화가 몰려왔다. 보험회사를 불러야 하는 건 그가 아니라 우리였다. 여차하면 렌터카에 범퍼 교체에 어떠한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오전을 날렸고, 이유 없는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 집 동 호수와 연락처, 차량 번호와 이름까지 모든 게 넘어간 상태였다. 핸드폰을 들고 보험 접수를 할까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흰 숏패딩 차주로 인해 더 이상 내 일상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옆집 아저씨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돈 앞에 무너진다. 마치 소금을 싣고 가던 당나귀가 시냇물에서 쉽게 무게를 줄인 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얕은꾀를 부려 자신의 이득을 늘리려 한다. 인생은 동화처럼 권선징악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지 조차 의심될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소금 장수와 당나귀> 우화의 진짜 교훈은 권선징악이 아니라 '신뢰'라고 생각한다. 당나귀는 꾀를 내다가 자신의 본분을 잊었고, 중요한 파트너의 신뢰를 잃었다.
옆집 아저씨는 내 차가 부딪힌 것도, 내가 눈감아 준 것도 이 아침에 어떤 난리가 있었는지도 영영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도 옆집 가족이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눈감아 주었는지, 얼마나 참아줬는지 추측만 해볼 뿐 영영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집의 그러한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나의 이러한 행동이 흰 숏패딩 차주에게 흘러갔다. 그리고 이 글을 본 누군가에게도 흘러가, 그렇게 돌고 돌아 참고 인내한 분들에게 다시 그 따뜻함이 돌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