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을 키우면 엄마 목소리가 장군감으로 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들 둘을 키우면 엄마 목소리가 장군감으로 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직 장군이 되진 못했지만 아이는 내 안의 괴물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 괴물이 기진맥진해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지친다. 만 9세와 만 4세 아이는 다섯 살 차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지지고 볶고 잘도 싸운다. 막둥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첫둥이가 억울한 표정으로 달려와 자초지종을 말한다. 눈썹은 위에서 아래로 휘어지고 쌍꺼풀진 눈은 반쯤 덮여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다. 입술은 아래로 쳐진 채 하소연할 채비를 마친 얼굴이다.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첫둥이를 앞에 앉힌 채 판결을 시작한다. 먼저 원고로 보이는 첫둥이에게 상황을 묻는다.
"무슨 일이야?"
첫둥이는 한껏 감정이 격해져 말을 더듬으며 호소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먼저 책으로 집을 만들고 있었는데 푸른이가 와서 자꾸 방해하잖아. 내가 하지 말라고 열 번도 더 넘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들어."
형의 목소리를 들은 막둥이가 더 큰 울음을 터뜨리며 쪼르르 달려와 내 무릎에 앉는다. 첫둥이는 막둥이의 앙탈이 맘에 안 드는지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제지한다.
"김푸른! 하지 마. 네가 내가 만든 거 다 부셨잖아."
막둥이는 고양이 주먹처럼 손을 움켜쥐고 간신히 소리친다.
"아니야! 형아는 다 형아 마음대로만 하잖아."
품을 파고드는 막둥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다시 상황을 묻는다.
"이번엔 푸른이가 말해봐. 울기만 하면 아무도 푸른이 마음을 몰라. 푸른이 입으로 직접 말해봐."
막둥이는 꺼이꺼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띄엄띄엄 이야기한다.
"내가 책으로 집 만들었는데 형아가 다 부셨어. 형아가 하라는 대로 안 한다고 부숴버렸어. 나는 책을 세워서 만들고 싶은데 형아는 자꾸 눕혀서 만들라고 해."
나비눈을 뜨고 동생을 흘겨보던 첫둥이가 다시 말을 잇는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엄청 멋진 집 만들려면 저기까지 공간이 다 필요한데, 푸른이보고 다른 데 가서 하라고 해도 안 가잖아. 참다 참다 너무 화가 나서 부셨어."
사실 나는 재판관은 못된다.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를 비난하고 자기 마음대로만 하고 싶어 하는 두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뱃속이 부글부글 끓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내 안의 괴물이 자기가 힘으로 제압해 버리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나? 얼마나 억울했으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엄마에게까지 끌고 왔을까. 재판관에서 중재자로 한 계단 내려와 다시 아이들을 바라본다.
"첫둥이는 집을 크게 짓고 싶고, 막둥이는 책을 빈틈없이 세우고 싶은 거야?"
두 아이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자기편이 되어서 본인 뜻대로 해주리라 잔뜩 기대한 채 물먹은 솜 같은 눈을 반짝이지만 나에겐 해결책이 없다. 씩씩 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는 첫둥이에게 물었다.
"꿀동아 지금 이런 상황인데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너는 책을 눕혀서 크게 짓고 싶은데, 푸른이는 책을 세워서 방석만큼만 채우고 싶대."
첫둥이는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알았어. 그럼 내가 푸른이 집 피해서 다른 쪽으로 지을게. 푸른이 집 부순 것도 다시 더 멋지게 만들어줄게."
자기 주도적이고 성취하는 걸 좋아하는 첫둥이는 다시 집을 지을 궁리에 빠져 재빠르게 움직인다. 이번엔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안아주길 기다리는 막둥이에게 물었다.
"푸른아. 형아가 집을 다른 쪽으로 지어서 푸른이 집 지을 공간 만들어 준대. 그리고 아까 푸른이가 지었던 집 다시 지어준대. 푸른이는 어때? 그렇게 하면 되겠어?"
막둥이는 그래도 마음이 안 풀리는지 바닥에 드러누운 채 형아의 행동을 지켜본다. 첫둥이는 막둥이가 했던 대로 책을 세워서 집을 만든다. 막둥이는 분한 마음에 몸태질을 하며 첫둥이가 만들고 있는 집을 부수었다. 첫둥이의 날카로운 비명과 동시에 막둥이는 첫둥이가 원래 지어놨던 커다란 집도 망가뜨렸다. 첫둥이는 발을 쿵쿵 거리며 본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막둥이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거 아니야. 이렇게 구멍이 많으면 도둑이 들어와. 아까 나는 다 막아놨었단 말이야. 이건 내가 만든 집이 아니야."
막둥이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형아가 본인에겐 책을 나르는 일만 시키고 만들려고 하면 자꾸 제지해서 억울함이 쌓여있었다. 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엄마가 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육아전문가와 실시간으로 채팅이라도 주고받고 싶은 심정이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알려줄까? 책으로 엉망이 된 바닥을 구르며 막둥이는 울분을 쏟아냈다. 막둥이를 두 팔로 안아 들고 품 안에 감쌌다.
"그랬구나. 푸른이 정말 속상하겠다. 형아가 푸른이에게 책 나르는 것만 시키고 집을 부수어서 화가 많이 났구나."
막둥이는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슬픔을 토해낸다. 얼른 첫둥이에게도 가봐야 하는데. 막둥이의 마음이 잦아들길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데 마침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엉망이 된 거실을 보고 입이 벌어진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남편에게 막둥이를 부탁했다.
첫둥이의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요, 절대!"라고 쓰여 있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두 번 노크하니 첫둥이는 누군지 알아차리고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엄마는 들어와도 돼. 엄마만."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를 마음에 들여주는 첫둥이가 고마웠다. 화나고 분한 상황에서도 엄마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구나. 첫둥이는 엄마가 와서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이 감정들을 풀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의 한성열 명예교수는 그동안 대학의 학생들에게만 했던 강의를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확대한 <심리학 콘서트>를 개최했다. 한교수는 사람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다고 강론한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구름이 몰려오면 그 구름을 재빨리 몰아내려 하지 말고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부정적 감정을 충분히 발산하고 끊임없이 내뱉도록 도우면 그 감정이 끝이 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한된 감정의 크기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 만큼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의 힘을 더하는 것보다 부정의 힘을 빼주는 것이 쉬운 일이라 설명한다.
또한 누군가 나와 이야기를 안 하려 한다면 내가 틀린 얘기를 해서가 아니라, 옳은 얘기만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무거운 짐으로 막혀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무거운 짐만 걷어 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사람도 모르고 있는 감정을 깨닫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라 결론짓는다. 나는 한교수의 강의를 떠올리며 다시 중재자에서 첫둥이의 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심판관도 중재자도 아니고, 첫둥이의 어떤 마음도 다 받아주고 끌어안아줄 수 있는 첫둥이 전용석이다.
첫둥이는 화가 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만들기 재료로 모아놓은 빈페트병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고 있었다. 눈이 빨개지고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 많이 참고 양보하는 첫둥이가 오죽했으면 이렇게 방으로 달려와 페트병을 내리치고 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첫둥이는 태권도 2품에, 격파대회에서 2위를 수상할 정도로 다부졌는데 힘으로 동생을 제압하는 건 아마 껌 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힘을 참고 감정을 다스리려는 첫둥이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동이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래 그거라도 쳐서 마음이 풀리면 내리쳐. 근데 손이 빨개졌네. 이건 날카로워서 예쁜 금손 다치면 안 되니까 이 베개를 치자."
첫둥이는 엄마가 자기에게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으로 베개를 쾅쾅 쳤다. 그러다 베개는 필요 없다는 듯 다가와 안겼다.
"꿀동아 엄청 속상하지? 엄마는 언제나 꿀동이 편이야. 엄마는 꿀동이 말만 믿고 꿀동이를 제일 많이 사랑해."
첫둥이는 알고 있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첫둥이에게는 첫둥이가, 막둥이에게는 막둥이가 제일 소중하고 엄마가 본인 편이라고 말해준다. 그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마음을 풀고 힘을 낸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더 큰 힘을 얻는다.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얼마나 믿고 따르며 사랑해 주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사랑으로 마음이 채워짐을 느낀다.
첫둥이를 한창 다독이는데 남편과 막둥이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의 고함소리를 듣자 하니 막둥이가 책을 집어던지고 미끄럼틀을 주먹으로 치며 화를 냈나 보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렸을 남편은 막둥이의 분노에 예의와 버릇을 운운하며 힘으로 꺾으려 하고 있었다. 아차 싶어 첫둥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막둥이에게 달려갔다. 막둥이를 안아 들고 이제 내가 할 테니 첫둥이와 먼저 밥을 먹으라고 권했다. 남편은 얼굴이 벌게져 답답함을 토로했다.
"푸른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책을 집어던졌어. 이런 상황에 내가 어떻게 밥을 먹어."
남편은 아이들이 왜 싸우고 화를 내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푸른이가 책을 던지니 나쁜 행동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마주친 상황이라 마음에 여력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둘이 이래저래 해서 엄청 싸웠어. 애들 둘 다 엄청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이야. 그럴만해서 그랬어. 이제 내가 할 테니까 첫둥이랑 밥 먹어. 첫둥이는 이제 다 풀렸어."
막둥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막둥이는 아빠가 안 보이게 내 뒤에 숨어있다가 얼른 내 손을 붙잡고 순순히 따라나섰다. 화를 잘 안내는 아빠가 큰 소리를 치니 놀라서 겁에 질린 막둥이가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막둥이를 안으니 나비눈을 뜨고 솜방망이 주먹으로 이불을 내리친다. 몸을 흔들며 고개를 휘휘 젓는다.
"푸른아. 많이 놀랐어? 화가 엄청 많이 났구나. 주먹으로 이불을 치고 몸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정도로 힘이 센데 아빠가 푸른이를 힘으로 잡았구나."
막둥이는 더 세게 주먹을 휘두르고 몸을 더 빨리 움직였다.
"우아. 푸른이 진짜 빨라서 안 보여. 힘도 엄청 세네. 어머 세상에. 이렇게 빠르고 세다니!"
막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비눈을 뜨고 말했다.
"아빠가 푸른이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 나도 아빠 밖에다 버려버리고 싶어. 아빠랑 형아랑 다 싫어."
막둥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 작은 마음에 뒤엉킨 미움과 분노, 이 작은 입술에 새어 나오는 슬픔과 억울함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 엄마는 늘 집안일로 분주했다. 그런 엄마에게 혼이나 방에 틀어박혀 울 때면 아빠가 방문을 두드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울어대는 내 옆에서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계셨다. 울음을 멈추고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가 얼마나 나쁘고 미운지 분출하고, 억울한 일을 편파적으로 확대해석해 미주알고주알 내뱉어도 아빠는 "아이고 그랬구나"하면서 끝까지 들어주셨다.
어두운 방안에 불이 켜지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면 이야기가 끝이날 시간이었다. 아빠는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아빠가 이제 다 알았어. 아무 걱정하지 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할게"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직도 그때의 아빠 모습은 내 롤모델이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얘질 때마다 나를 다독였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의 옆에 앉았다. 아이의 작은 머리통에 입을 맞추며 부서진 마음에 애정을 쏟아붓는다. 깨진 마음에 연고를 바르고 후후 불어 반창고를 붙인다. 더 큰 상처는 꿰매고 소독한다. 막둥이의 분노와 슬픔이 끝나고 뽀송한 얼굴빛으로 돌아오자 남편과 자리를 바꿨다. 둘이 오해를 풀고 사과하도록, 사랑으로 감싸 안고 더 큰 신뢰가 쌓이도록 돕는다.
다시 온 가족이 식탁 앞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첫둥이는 막둥이가 좋아하는 간장맛 닭강정과 떡을 그릇에 덜어주고, 남편은 가위로 작게 잘라 막둥이 자리에 둔다. 막둥이는 생글거리며 닭강정을 집어든다.
"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키즈카페 갔다. 엄청 재밌었어. 공룡 다이노 카페인데 진짜 공룡은 아니야. 근데 소리 내면서 움직였어. 비타민도 받았는데, 형아도 나눠줄 거야"
첫둥이는 양념치킨맛 닭강정을 씹으며 대답한다.
"오 진짜 재밌었겠다. 나도 선생님한테 젤리 받았는데 푸른이랑 나눠먹으려고 안 먹고 참았지. 아까 준우랑 놀다가 동그랗고 예쁜 돌멩이도 찾았어. 거기에 그림그려서 멋진 작품 만들거야. 푸른아, 우리 밥 먹고 다시 더 멋지게 집 짓자. 이번엔 형이 도와줄게. 같이 하자."
막둥이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친다.
"좋아! 형아 최고!"
둘은 또다시 한 팀이 되어 작당모의를 시작한다. 남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와 반을 내 잔에 따른다.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서로를 위로한다. 네 맘이 내 맘이야. 가소롭지만 진지하고, 정신이 나가지만 더 가까워지는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집. 오늘도 아들 두 마리는 웃고 울며 무럭무럭 자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