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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31. 2023

산타 할아버지 졸업기

늦둥이 막내는 큰 애와 9살 터울이다. 나이 들어 낳은 아이다 보니 더 귀엽다. 늦게까지 크리스마스 동심을 지켜주려 애썼다. 그래서 막내는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설레는 크리스마스 아침을 지켜주려고 이 나이 든 엄마는 참 노력을 많이 했다.

중학생인 큰 언니들은 없고(사실 큰 애들은 현금이 더 좋단다) 자기만 산타 선물이 있으니 어린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산타 할아버지를 믿고 있었다. 한 때 유행했던, 거실 풍경에 산타할아버지 모습을 합성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사진 덕분에 아이는 더욱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다.

큰 아이들은 막내한테만 왜 그리 별나냐고 했다. 어린 나이에 뭣도 모르게 키웠던 큰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천진난만한 막내의 그 마음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고 지켜주고도 싶었다.

그 해는 크리스마스 무렵 너무 바빠서 아이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준비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날짜는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전날도 마트 가야지 하다가 피곤해서 아이와 함께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새벽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머, 어머, 어떡해. 깜빡 잠이 들었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가보니 거실의 한 벽에 아이가 걸어놓은 대형 양말을 보였다.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감사 편지도 쓰고 전 세계를 다 다니느라 힘드시다고 간식까지 싸서 양말 속에 넣어둔 것이다. 언니들한테 알려달라고 했는지 산타 할아버지한테 삐뚤빼뚤 영어 메시지 카드까지.

‘santa, take it’


이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입을 싹 씻을 수가 있을까. 결국 아침 9시에 나가 대형마트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선물을 샀다. 집에 전화하니 어제 저녁에 늦게까지 놀아서인지 아직 안 일어났다고 했다. 다시 헐레벌떡 돌아와 얼른 양말 아래에 선물을 두고 카드와 간식을 챙겼다. ​


밭은 숨을 몰아내면서 방에 들어와 자는 척하고 있는데 건넌방에서 바로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거리더니 잠시 뒤 방문이 벌컥 열린다.

“엄마!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내 편지랑 간식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선물도 주셨어!”

아이는 양말과 선물을 들고 침대 위로 훌쩍 올라왔다. 나는 방금 잠에서 깬 듯이 연기를 했다.

“정말? “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믿고 있는 아이에게 이제는 산타 할아버지를 졸업시켜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산타할아버지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보낼 수 있을까 해서 생각한 방법, 바로 산타 할아버지가 더 어린 동생들이 많아져 바빠져서 이제 못 온다는 소식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글씨는 티가 안 나도록 왼손으로 열심히 썼다.



이 편지로 꼬맹이는 산타 졸업을 했다. 아이는 많이 서운해하면서도 이해했다.

“하긴, 이제 동생들이 더 많아져서 힘드시긴 하겠다. “

“그렇긴 하지?”

“근데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한글을 쓰셔?”

“네가 한국사람이니까 그렇게 쓰셨겠지. 그러니까 글씨가 삐뚤빼뚤하잖아.”

“그러네. 근데 왜 편지지가 우리 집에 있는 포장지랑 똑같아?”

아뿔싸. 편지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집에 있는 포장지 뒤에 생각 없이 썼더니 아이가 그걸 알아챈 것이다.

“엄마, 나 사실은 산타 할아버지 없는 거 알고 있었어. “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를 잊은 지 오래된 중학생 사춘기 소녀다. 가끔 물어보면 지금도 크리스마스 날 아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는  그 설렘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아쉽단다. 아이에게 추억 한 자락 남겨준 것 같아 좋다. 그리고 나도 그 추억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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