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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n 11. 2023

한 잔 할까?

그래, 이 맛에 일을 하지


"오늘, 한 잔 할까?"


퇴근도 하기 전에 온 남편의 문자. 맞다! 월급날이지!

​어차피 이렇게 저렇게 빠져 나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바닥날테지만 그래도 이 날만큼은 마음이 푸근하다. 그 기분을 한껏 즐기기 위해 우리는 동네 호프집을 자주 갔다.


​퇴근을 하고 와서 저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학원을 다녀온 아이를 기다려 함께 동네 호프집으로 갔다. 아이들과 저녁겸 먹으려고 훈제족발과 골뱅이소면을 시켰다. 우리 가족은 기름기를 쪽 뺀 훈제족발을 식사로도 술안주로도 즐겨먹었다. 쫄깃한 껍질이 더 맛있어 어느새 뼈만 남았다. 그 뼈를 들고 막내가 개구지게 먹었다. 남편도 질세라 족발을 분해하듯 알뜰히도 발라 먹었다.


하얀 소면은 벌건 양념의 골뱅이와 잘 섞어야 제맛이다. 매콤한 양념으로 맥주와 잘 어울리는 골뱅이소면을 아이들은 맵다고 하면서도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골뱅이 사이의 오징어채를 골라 질겅거리며 씹어먹는 재미가 좋았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먹는 수박 한 조각도 일품이다. 어느새 술안주할 것도 없이 접시는 비워졌고 탁자위를 오가던 젓가락질은 점점 느긋해졌다.


봄, 가을이면 실내보다 가게 바깥 탁자를 잘 이용했다. 테라스의 탁자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실내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파란 하늘을 기분좋게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즐기다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실내와 다른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네다 보니 가끔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아는 척도 하고 모기에 물려 모기향을 잔뜩 피워야 했다. 시간이 멈춘듯 여유가 느껴지는 그 시간만큼은 우리는 참 사랑했다.


​대한민국 월급쟁이라면 누구든 그렇겠지만 그 옛날 신혼 시절의 우리도 월급날이면 집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17평 지하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별 가구도 없이 시작해 조금씩 채워나갔다. 대출금에 빠듯한 살림살이에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플 수도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그저 좋았다.


​“그래도 오늘이 월급날인데 한 잔 할까?”


그때도 월급날이면 그 행복감에 가끔 동네 감자탕집으로 한 잔 하러 갔다. 소주 한 병에 여러 명이 먹을 수 있는 감자탕도 아닌, 1인분의 뼈해장국을 술안주로 시켰다. 그 한 그릇의 뼈해장국을 두 개의 숟가락으로 열심히 구수한 국물을 떠 먹었다. 소주를 잘 못 마시는 나는 한 잔으로, 남편은 나머지로 오가며 하루를 이야기했다. 뼈사이의 살을 알뜰히 발라 술안주로 먹고 늦은 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집으로 들어갔다. 올려다 본 까만 하늘도 그 속의 빛나던 별빛도 걸어가면 흔들리던 노란 가로등도 모두 아름다웠다. 그 날만큼은 직장생활의 힘듦으로 달아오른 얼굴이 아닌 푸근한 가슴으로 기분좋게 잘 수 있었다.


​그 신혼 시절, 소꿉놀이같은 살림을 살면서도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갔던 시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와중에 작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려고 했던 우리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부족했지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누리는 사이 우리들의 행복도 추억도 차곡차곡 쌓였다. 주택단지 좁은 지하방에 살면서 있었던 좋고 힘든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때도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 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조차 미소지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겨졌다.


“뭐 더 먹을래?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기분좋게 마시던 남편이 아이들에게 호기있게 말했다. 방금 튀겨져 바삭하게 맛있는 감자튀김을 먹고 배불러진 아이들은 먼저 집에 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우리 많이 발전했다. 그치? 예전에 4천원짜리 뼈해장국 하나 놓고 소주 마시던 거 생각나?”


“그러네, 많이 발전했네. 이젠 애들한테 그래도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거 시켜줄 수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시켜놓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이렇게 원하는 걸 해 줄 있어서 참 좋다 하고 뿌듯해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도 수고했어 서로 한마디 해준다.


​막내가 어렸을 때 남편은 월급날이면 동네 문방구를 데리고 갔다. 아빠 월급날이라면서 이천원 삼천원짜리 작은 장난감을 사주었다. 막내는 뭣도 모르게 아빠의 월급날을 기다렸고 아빠의 이른 귀가를 기다렸다. 거실에서 초인종소리가 들리길 바라다 드디어 아빠가 오시면 얼른 팔에 매달려 손을 잡고 동네 문방구로 향했다. 기분좋게 아빠랑 이야기도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온갖 형형색색의 놀잇감으로 가득한 문방구를 들어갔다. 기대에 차 반짝거리는 눈으로 살피고 뭘 살까 고민하면서 이제 가자는 아빠의 독촉에 제 딴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하며 골랐다. 집에 와서는 온 가족들앞에서 자랑을 늘어지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남편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미 그 장난감들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아이에게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문득 가끔 통닭이나 샌드위치빵을 사오셨던 친정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술빵만 먹던 우리들에게 부드러운 식빵사이의 크림은 정말 환상의 맛이었다. 그 날은 환상의 맛을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어떤 날은 용돈을 주셨고 어떤 날은 50원짜리 핫도그를 사주셨다. 그 날은 아빠에게 어떤 의미의 날이었을까? 우리처럼 한 달의 고됨을 상쇄할만큼 기분좋은 월급날이셨을까? 그저 우리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싶은 날이셨을까? 간식이 별로 없던 그 시절 아빠가 사주셨던 그 간식들을 먹으며 마냥 좋았던 기억이 난다. 기분좋게 술드시고 오셔서 우리 삼남매를 끌어당겨 턱수염으로 부비시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 때는 그 까끌한 턱수염의 느낌이 싫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다 아련한 추억이고 사랑이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크리스토퍼 몰리는 모든 행복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면 노후에 훌륭한 대비책이 된다는 말을 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추억의 힘은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특히 행복한 추억은 살아가는 동안 힘든 순간에 힘을 낼 수 있도록 해 준다.


​월급날의 한 잔도, 그 날 얼굴로 스치던 바람도, 너무나 청명했던 하늘도, 월급날 받는 장난감도, 간식도, 그 따가웠던 아버지의 수염도 모두 나와 우리 아이들의 행복통장 잔고로 쌓일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지금이 만족스러울 때보다 현실이 힘겨울 때, 행복이 부족할 때, 아쉬울 때 꺼내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며 두고두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대비책이 될 것이다.


​행복한 순간은 월급날 마시는 맥주 한 잔처럼 거창한 일들이 아니라 아주 쉽고 작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에게 우리에게 의미있는 날을 기념하고 소소하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 우리들의 행복통장을 채웠으면 좋겠다. 아쉬움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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