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간다는 것
살아오면서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내가 가장 내적 갈등을 많이 겪은 때는 큰 딸의 성장과정이었다. 언제나 부모로서 항상 처음일 수 밖에 없는 큰 아이와의 숙명이다.
모범적인 생활을 해 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세대차이로 인한 몰이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녀도 힘들어했다.
사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를 미리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구보다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고 나는 아이가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엄마가 되어야지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한 것과 실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과의 천지차이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세상에 가장 먼 것이 머리와 가슴사이라고 했던가. 난 아이를 키우면서 무엇보다도 그걸 절실하게 느꼈다. 한창 갈등이 심했을 때 자존심 상하는 심한 말도 했고 당연히 아이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그 와중에 노심초사하는 건 나뿐이었다. 아이는 아이의 길을 걸었고 그 사이에는 당연히 도전과 실패,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럴 걸 알면서도 부모라는 이름이 붙으니 자연스러운 과정을 겪지 못하게 하는 건 엄마였다. 그러니 바뀌어야 하는 것도 나였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내가 이해 못 하는 요즘 아이들의 문화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로서 하고 싶은 생각도 전달해야 했다. 그 간극을 줄이는 노력은 그걸 깨달은 부모가 먼저 해야 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면 나는 늘 나의 엄마, 아빠를 떠올렸다. 내가 우리 아이 나이였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나여서 이해되었던 것들이 엄마, 아빠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위태로웠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마음을 이해하며 딸아이를 다시 본다. 그럼 조금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게 고비고비마다 떠올렸고 그 불편한 마음이 많이 내려놓였다. 더불어 아이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
아직도 나는 부모로서 자라는 중이다. 아이들은 계속 자랄 테고 내가 부모로서 겪지 못한 상황은 끊임없이 다가올 것이다. 여전히 갈등이 있고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나도 아이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누구보다 부모의 몫이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를 분리하고 나의 마음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생각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나와 너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길이 보일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