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리
"선생님, 저 결혼해요!"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던 어느 날, 오랜만에 듣는 동료의 결혼 소식이었다. 결혼식은 주례 없이 신랑신부의 결혼서약으로 조용히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앞으로의 삶을 함께 가꾸어가겠노라 약속하며 서약서를 낭독했다. 환한 미소가 그들 안에 가득했다.
그 빛의 가장자리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세상의 모든 빛이 신랑신부를 향해 쏟아지는 탓에, 부모님의 뒷모습은 유난히 짙고 어둡게 보였다. 어머니는 가끔 눈가를 훔쳤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손등을 조심스레 토닥였다.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 모습이 문득, 어느 해 내 부모의 모습과 겹쳐보았다.
2년여의 연애 끝에 한 결혼이었다. 나는 첫 부임지의 새내기 교사였고, 남편은 아직 대학원생이었다. 가진 것도, 안정된 것도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온통 핑크빛 세상이었다.
그날은 12월답지 않게 포근했다. 눈앞의 그 사람만 보였다. 엄마 아빠의 모습도, 친구들의 표정도, 축하해 주는 친지들의 모습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빠가 어떤 눈빛으로 나를 보셨는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좋아서, 너무 어려서, 주변을 살필 줄 몰랐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었다. 그 나이에 딸을 시집보내셨다니… 저 신부의 부모님처럼, 한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으셨겠지. 아무것도 못하는 딸이 제대로 밥은 해 먹고 다닐까, 시부모님께는 살갑게 잘 대해 드릴까, 살림은 어떻게 알뜰하게 살려나… 수많은 걱정과 아쉬움을 삼키며 말없이 바라보셨을 것이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그날의 엄마, 아빠가 보였다.
결혼을 준비할 때 부모님은 단 한마디의 반대도 하지 않으셨다. 이제 와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직장도 없는 남자와 이제 막 사회에 나선 딸이 결혼을 한다는데, 어느 부모가 걱정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두 분은 묵묵히 허락해 주셨다.
뒤늦게 동생에게 들었다. 엄마는 많이 서운해하셨다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훌쩍 결혼해 버려, 안타까웠다고. 하지만 나에겐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그만큼, 난 철이 없었다.
만약 내 딸이 그런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떨까? 기다려주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님은 그때 이미,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이셨다.
이제 나는 신부보다 부모의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다. 빛나는 두 사람 뒤편에서 조용히 눈시울을 훔치는 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그 마음이 내게도 서서히 자라고 있는 듯하다.
결혼한 지 스무 해가 훌쩍 넘었어도, 엄마 앞에서는 난 그저 딸이었다.
“무슨 일 없니? 애들은 잘 지내니?”
“바쁜데 뭐 해 먹을거나 있니? 다음에 반찬 좀 가져갈래?”
엄마의 질문은 항상 같았다. 그 질문의 끝은 항상 나를 향해 있었다.
“네 건강도 잘 챙겨.”
이제 나도 그 시선을 닮아간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의 시선도 자꾸 그들에게 머문다. 걱정하고, 기다리고, 또 바라본다. 그날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의 부모님처럼, 나도 언젠가 멀리서 바라보는 법을 익히게 되겠지. 그 시선의 끝을 감싸는 사랑을 배우며 나도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