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방조제를 걷다

때로는 짧게 보기

by 케이론

바람이 세찼다.


시화방조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옆에 둔 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어, 그 긴 직선을 택했다.


시화나래조력공원에서 숨을 고르고,

대부도 쪽으로 발을 옮겼다.

4킬로쯤 이어지는 길은 밋밋하게 뻗어 있었다.

발자국마다 바람이 스쳤고,

멀리선 파도 소리가 잦아들었다.


조금 지루해질 즈음 바닥으로 눈을 떨궜다.

가로수 아래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마다

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닥의 풀들이 만들어낸 작은 결승선.

저 멀리 끝은 까마득하지만,

나는 이 작은 결승선을 따라 걸었다.


그래, 저기까지. 조금만 더. 다 왔다.

그렇게 속삭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끝에 닿아 있었다.


삶도 그렇다.

너무 멀리 보면 길이 두렵고,

너무 가까이 보면 길이 사라진다.


오늘은 그저 눈앞의 풀 한 포기만 본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힘들 땐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퇴근을 기다리고,

그렇게 주말을 기다리고, 휴가를 기다린다.

기다림이라면,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번엔 11킬로였다.

다음번엔 끝과 끝, 22킬로를 걸어볼까.

가까운 결승선을 보며, 다시 나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