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성장기 7- 그림을 선물한다는 건

마음을 선물하는 것

by 케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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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게 완성한 그날, 막내 시누가 놀러 왔다. 그림을 보더니 너무 잘 그렸다고 한참을 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언니, 우리 애도 하나 그려주면 안 될까요?”

그리면 그릴수록 나아지는 솜씨에 고무된 나는 덜컥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혼자 즐기는 그림과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의 의뢰든 부탁이든 다른 사람에게 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에너지가 두 배는 더 쓰이는 것 같다. 그냥 내 멋에 즐기는 그림과 달리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초상화이니 닮은 그림을 당연히 원할 테고 연습 삼아 그리는 연습이 아니니 더욱 완성도는 높여야 하고. 남 앞에 작품을 선보이거나 작품을 판매하는 프로 작가들의 고충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이었다. ​


시조카 얼굴을 오랫동안 관찰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림을 그리게 돼서야 아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아이의 갸름한 얼굴과 보조개, 까맣고 작은 눈, 복스러운 귀, 그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까지. 관찰은 대상을 애정하게 한다. ​


그동안 알게 되었던 기법을 총 동원했다. 그리드 기법으로 형태를 그리고 연한 연필부터 진한 색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얼굴의 밝은 부분과 그림자를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 문지르기도 했다. 나름 고운 결의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


그런데 배경이 밝으니 화사한 얼굴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밝은 햇살 속의 아이였는데 그 밝음이 충분하게 표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 종이 색보다 더 밝은 색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그림들을 찾아보다가 어떤 작품이 눈에 띄었다. 화사한 여자아이의 표정, 그 표정이 더욱 밝게 보이는 게 바로 배경이었다. 바로 배경을 어둡게 만들기. 밝음과 어둠은 상대적이어서 어둡게 하면 상대적으로 명도가 높은 곳이 더 높게 느껴졌던 것이다.​


밝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이렇게 배경처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 얼굴 주변의 배경을 어둡게 색을 올렸다. 배경을 문지르고 다시 연필색을 올리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서 충분히 어둡게 만들었다. 어느새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지금 이 그림은 대학을 다니는 시조카의 집에 걸려 있다. 다시 보니 좀 더 생동감 있는 눈을 그려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다. ​


그림을 선물한다는 것은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대상을 한없이 관찰하며 바라보면서 느낀 애정을 함께 주는 것이다. 그건 그림을 그려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이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지금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연필초상화를 아무한테나 그려주지 않는다. 나의 그림을 대하는 소중한 마음을 마구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때는 내 손에서 표현되는 그림이 너무 신기해서 나는 겁도 없이 바로 큰 일을 벌이게 된다.

“연필초상화 그림을 그려드립니다!”

바로 내가 회원으로 있던 온라인 모임에 초상화 그려주는 이벤트를 하겠다고 글을 올린 것이다! 무슨 용기였을까?


올리자마자 띠링띠링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