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선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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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게 완성한 그날, 막내 시누가 놀러 왔다. 그림을 보더니 너무 잘 그렸다고 한참을 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언니, 우리 애도 하나 그려주면 안 될까요?”
그리면 그릴수록 나아지는 솜씨에 고무된 나는 덜컥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혼자 즐기는 그림과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의 의뢰든 부탁이든 다른 사람에게 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에너지가 두 배는 더 쓰이는 것 같다. 그냥 내 멋에 즐기는 그림과 달리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초상화이니 닮은 그림을 당연히 원할 테고 연습 삼아 그리는 연습이 아니니 더욱 완성도는 높여야 하고. 남 앞에 작품을 선보이거나 작품을 판매하는 프로 작가들의 고충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이었다.
시조카 얼굴을 오랫동안 관찰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림을 그리게 돼서야 아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아이의 갸름한 얼굴과 보조개, 까맣고 작은 눈, 복스러운 귀, 그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까지. 관찰은 대상을 애정하게 한다.
그동안 알게 되었던 기법을 총 동원했다. 그리드 기법으로 형태를 그리고 연한 연필부터 진한 색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얼굴의 밝은 부분과 그림자를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 문지르기도 했다. 나름 고운 결의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그런데 배경이 밝으니 화사한 얼굴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밝은 햇살 속의 아이였는데 그 밝음이 충분하게 표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 종이 색보다 더 밝은 색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그림들을 찾아보다가 어떤 작품이 눈에 띄었다. 화사한 여자아이의 표정, 그 표정이 더욱 밝게 보이는 게 바로 배경이었다. 바로 배경을 어둡게 만들기. 밝음과 어둠은 상대적이어서 어둡게 하면 상대적으로 명도가 높은 곳이 더 높게 느껴졌던 것이다.
밝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이렇게 배경처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 얼굴 주변의 배경을 어둡게 색을 올렸다. 배경을 문지르고 다시 연필색을 올리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서 충분히 어둡게 만들었다. 어느새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지금 이 그림은 대학을 다니는 시조카의 집에 걸려 있다. 다시 보니 좀 더 생동감 있는 눈을 그려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림을 선물한다는 것은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대상을 한없이 관찰하며 바라보면서 느낀 애정을 함께 주는 것이다. 그건 그림을 그려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이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지금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연필초상화를 아무한테나 그려주지 않는다. 나의 그림을 대하는 소중한 마음을 마구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때는 내 손에서 표현되는 그림이 너무 신기해서 나는 겁도 없이 바로 큰 일을 벌이게 된다.
“연필초상화 그림을 그려드립니다!”
바로 내가 회원으로 있던 온라인 모임에 초상화 그려주는 이벤트를 하겠다고 글을 올린 것이다! 무슨 용기였을까?
올리자마자 띠링띠링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