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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Oct 17. 2023

니 봤나!

나는 산책할 때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잘 듣지 않는다. 생각을 하거나 주변을 관찰하면서 걸을 때 방해가 된다. 그래서 되도록 무언가 생각하는 날은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 한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잘 듣는 방송 하나가 있다. ‘비밀보장 VIVO’.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어 듣기 시작했다. 진행자인 개그맨 송은이 씨와 김숙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처럼 듣는 팟캐스트다. 일주일에 1회씩 현재 430회가 넘게 한 장수 방송으시작된 지 거의 만 7년 가까이 된다. 첫 회부터 정주행 중인 나는 아직 250회를 지나며 아껴 듣고 있다. 나는 조용히 비보(비밀보장을 줄여 이렇게 부른다)를 정말 좋아하는 땡땡이다.(비밀보장 청취자를 일컫는 애칭이다)


두 개그맨이 고민상담이라는 소재로 서로 대화하면서 여러 코너를 통해 들어온 사연에 대해 나름 해결해 준다.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은 지인 전화 찬스를 통해 물어보곤 했다. 때로는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기도 했다. 두 사람의 시원한 웃음소리와 개그 포인트도 재미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전화 통화하는 모습도 좋다.


무엇보다 송은이 씨가 이 방송을 만들었던 계기를 마음에 와닿았다. 여자개그맨의 자리가 좁아질 때 내가 만들고 망하더라도 주도적인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청명한 가을, 오늘도 기분 좋게 산책길에 비보를 듣고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 혼자 큭큭 웃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하면서 가볍게 걸었다. 2020년 2월의 방송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전 국민이 힘든 시기에 ‘기생충’이란 영화가 아카데미 오스카상 4관왕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들썩했던 날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김숙 씨의 절친인 장혜진 배우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한 것이다. 장혜진 배우는 ‘기생충’ 출연배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가 있었다.

두 진행자는 친구의 기쁜 소식에 흥분해서 축하한다며 연신 환호를 질렀다. 연결된 전화기 속에선 장혜진 배우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함께 흥분된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공식적인 인터뷰도 아닌 친구의 전화에 있는 그대로 들뜬 마음을 마구 뿜어대었다. 김숙 씨는 친구의 쾌거에 너무나 흥분하며 축하의 기쁨이 넘쳐나게 함께 좋아했다. 송은이 씨는 감동이라면 눈물까지 난다고 했다. 그 순수한 진심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숙아, 니 봤나? 이게 웬일이고!”

친구의 전화를 받은 장혜진 배우의 첫마디였다. 감격스러운 목소리.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 온몸으로 축하해 주는 두 사람의 모습. 물론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이라 소리만 들리지만 그 모습절로 상상이 되었다. 함께 그 감동이, 기쁨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웃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고였다. 기쁘면서 눈물이 난다는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순수하게 한껏 축하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마도 김숙 씨는 그동안 무명으로, 작은 배역으로 열심히 삶을 이어온 장혜진 배우의 시간을 다 알 것이다. 그래서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이어온 친구가 잘 된 모습에 진심으로 축하해 준 것이다. 또한 장혜진 배우도 자신의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에게 체면 따질 것 없이 순수하게 그 기쁨을 내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순수한 우정이 참 보기 좋았다. 맘껏 자랑하고 맘껏 기쁘게 축하해 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조차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처럼 감격스럽고 행복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일이 있어도 그 기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친하다는 친구라도 혹시 뭐 그런 걸로 좋아하나 하면서 별 거 아니라는 듯 생각할 수도 있고 시샘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또 친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보여 말을 삼키기도 한다. 도리어 힘든 일, 슬픈 일은 위로받기가 쉽다.


나도 내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김숙 씨처럼 진심의 온 마음으로 축하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 있는 친구를 만나 위로의 말을 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생겨 맘껏 자랑하고 맘껏 소리 지르며 기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스스로 옹졸한 마음이 생기지 않게 내 삶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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